설교 요한계시록 7장 강해(49) 대환란을 왜 7년으로 보는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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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19-11-23 10:45본문
요한계시록 7장 강해(49)
대환란을 왜 7년으로 보는가?-3-
주사랑교회 장한국 목사(예장진리 총회장/본지 부이사장)
지난호에 이어
13절) 그때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여 나에게 말하기를 “흰 옷을 입은 이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은 어디서 왔느냐?” 하기에 14절) 내가 그에게 말씀드리기를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들은 대환란에서 나온 사람들이며 자기들의 옷을 씻어 어린양의 피로 희게 하였느니라.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 앞으로 될 일, 즉 흰 옷을 입은 자들의 정체를 다 풀어주었습니다. 이는 그가 믿음으로 먼저 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은 흰 옷을 입은 자들보다 먼저 신앙수준이 그 이상으로 올라서서 이 모든 것을 겪은 것과 같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을 증거할 때 지식으로 증거한 것이 아니라 확실하고 실제적으로 믿음으로 받아가지고 있는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가 14절에 말하기를 ‘이들은 자기들의 옷을 씻어 어린양의 피로 희게 됐다’고 알려주는 것 자체가 장로 자신의 간단한 지식으로나 이론으로 알고 있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24장로의 자리에 들어가려면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실상으로 아주 확실히 받아가지고 있어야 됨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14절 본문의 ‘대환란’은 마24:21에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던 대환란’을 가리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환난이 많이 있었습니다. 또 각 민족과 나라마다 뼈아픈 환난이 있어왔으나 본문의 ‘대환란’은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던 최고의 환란(마24:21)으로서 7년 환란을 말씀하고 그 환란이 끝난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을 말씀했습니다(마24:29-31).
그런데 계시록을 해석하는 몇몇 분들이 본문 14절의 ‘대환란’을 해석할 때 꼼수를 써서 속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7년 환란이 대환란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7년 환란 중에 전 3년 반은 환란이고 후 3년 반은 진짜로 고통 받는 대환란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마24:21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환란이 후 3년 반을 말씀하신 것인가요, 7년 환란을 말씀하신 것인가요? 주님은 7년 환란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성도들이 받는 환란은 전 3년 반이 됩니다. 계시록의 한마디 한마디가 영혼을 살리고 죽이는 일인데 장로교 합동측의 저명한 목사들이 그와 같이 해석해 버려서 계시록을 깨닫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 그분들이 해석한대로 알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흰 옷을 입은 무리가 통과한 대환란은
마24:21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던 대환란 즉 7년 환란을 가리키고, 구체적으로 그 기간은 후 3년 반이 아니라 전 3년 반 기간 동안 환란을 받다가 죽임을 당한 후 흰 옷을 입게 된 것을 말씀합니다.
대환란에서 나온 사람들이 ‘자기들의 옷을 씻어 어린양의 피로 희게 하였다’는 말씀은 자기들의 죄가 어린양의 피로 씻어 깨끗이 희게 되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본문 구절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옷이 희게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말씀이 단12:10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란을 주시는 이유는 그 환란을 통해서 고통 중에 희고 정결케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환란의 연단을 통해서 우리의 미련이 싹 빠지고 “주님이 원하시면 제 목을 드립니다.” 하는 제물신앙으로 세워지는 것이 곧 희게 된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희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순교 제물로 바쳐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지 환란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원문성경 스테판 헬라어 성경에서도 이와 똑같은 해석이 나옵니다. 15절)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으며 그의 성전에서 그를 밤낮 섬기고,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리라.
본문 15절은 9절의 흰 옷을 입은 큰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하늘나라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서 찬송하는 그 상태에서 계속 진행되는 내용으로서 17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흰 옷을 입은 무리는 순교자들이요, 그들이 하늘에 올라가서 영광을 받고 찬송하는 광경입니다.
그러나 계시록을 상고하고 깨닫는 분들이 본문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요? 그분들의 해석에 의하면 본문의 ‘밤낮 섬기고’를 근거로 흰 옷을 입은 큰 무리가 있는 장소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땅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밤과 낮이 어디에서 나타나는 현상인가? 바로 이 땅에 마련된 예비처에서 밤과 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흰 옷을 입은 무리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17절에 어린양 예수님이 예비처에서 그들의 목자가 되어서 그들이 굶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게 생수의 샘들로 인도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늘나라에는 밤과 낮이 없는 것이 맞습니다. 또 목자이신 예수님이 교회에서 하셨듯이 예비처에서도 똑같이 목자가 되셔서 예비처 성도들을 양육하고 이끌어 가십니다. 예비처에 있는 성도들의 목자는 어느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흰 옷을 입은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밤낮 섬기는 그 장소는 앞의 9절에 ‘보좌 앞과 어린양 앞’ 즉 하늘나라로 제한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문맥적인 순서대로 읽고 깨달아야 합니다.
15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만 떼어서 임의대로 해석해 버리면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데로 빠져서 오류가 발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본문 15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은 앞에 9절로부터 계속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본문에 ‘밤낮 섬기고’의 뜻은 밤과 낮의 현상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항상’, ‘끊임없이’의 뜻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흰 옷을 입은 무리들이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밤낮, 즉 끊임없이 섬기고, 어린양 예수님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수의 샘들로 인도하시고 굶주리지 않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흰 옷을 입은 무리가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받아 누리며 사는 중에 생명과를 먹으면서 계속 힘을 얻고 새로워지듯이 그들의 영광이 계속 새로워지고 영광에서 영광으로 더해지는 역사를 말씀한 것입니다.
“내가 보니, 불로 뒤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그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숫자에 대하여 이긴 자들이 하나님의 하프들을 가지고 유리 바다 위에 섰더라.” (계15:2)
또 계시록을 해석하는 모든 목사님들이 계15:2에 ‘불로 뒤섞인 유리 바다’를 예비처라고 풀어놓았습니다. 그분들은 후 3년 반에 하나님이 불신앙적인 그의 백성들에게 진노를 쏟아 붓는 것이 불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진노의 역사에서 구별된 예비처가 유리 바다이며 그 불로 뒤섞인 유리 바다 안에서 이긴 자들이 보호ㆍ양육 받으면서 기뻐 찬양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유리 바다가 하늘에 있나요, 땅에 있나요? 계4:6에 하늘에 한 보좌가 놓여 있고, 보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15:2의 유리 바다가 있는 곳은 땅의 예비처가 아닌 하늘나라입니다. 또 유리 바다 위에 서 있는 이긴 자들도 하늘에 올라가 있는 자들임을 가리킵니다. 이긴 자들, 즉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표와 그의 이름의 숫자를 받지 않고 이긴 자는 누구인가요? 이와 관련된 말씀이 계20:4에 나옵니다.
보좌들 위에 앉은 자들에게 심판하는 권세가 주어졌고, 그들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임을 당한 사람들로서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 경배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표를 그들의 이마 위나 손에도 받지 아니한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순교 당한 후 살아나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받으니, 이것이 하늘의 가장 큰 영광이요, 그들이 가장 복된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일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짐승’과 ‘그의 형상’은 계시록에서 말씀하는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를 경배하지 않으면 모두 죽임을 당한다고 말씀했습니다(계13:15).
결론적으로 계15:2의 ‘유리 바다 같은 곳’은 땅의 예비처가 아니라 하늘나라이며 이긴 자들이 어떻게 그곳 하늘나라에 올 수 있었는가? 이는 그들이 전 3년 반 동안 짐승인 적그리스도와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의 표를 받지 않음으로써 순교를 통해서 유리 바다 같은 곳 하늘나라에 이른 것입니다. 또 불로 섞인 유리 바다의 ‘불’은 하나님의 진노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불을 뜻합니다.
16절) 그들이 다시는 굶주리지 아니하고 다시는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며, 태양이나 어떤 열기도 그들 위에 내리쬐지 못할 것이라. 17절) 이는 그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그들을 먹이시고 생수의 샘들로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본문 16~17절은 앞의 9절 말씀에 귀속된 말씀입니다. 흰 옷을 입은 무리들은 이미 하늘에서 영광을 받은 부활의 몸으로서, 어린양 예수님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먹이시고 생수의 샘들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즉 흰 옷을 입은 순교한 자들이 하늘나라에서 첫째 부활의 영광을 받아서 누릴 때 하늘나라에 있는 생명수 강에 의해서 맺어지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고 생명수를 마시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는 오늘날 주님이 교회에 목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생명나무의 과실과 생수를 먹고 마시게 하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영을 자라게 하기 위한 생수와 생명과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생수는 성령에 의해서 하늘에 속한 기쁨으로 충만케 하여 세워가는 역사요, 생명과는 예수님을 가리키므로 말씀으로, 진리로 영적인 양식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예비처입니다. 예비처에서 보호양육 받고 있는 사람들은 부활한 몸이 아니므로 지금 교회에서 주님이 목자가 되셔서 먹이고 마시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흰 옷을 입은 큰 무리들이 예전에 이 땅에서 굶주리고, 목마르고, 열기에 고통 받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린양 예수님이 흰 옷을 입은 무리들의 목자가 되어서 생명수 강이 흐르는 양편에 심은 생명나무가 달마다 내는 과실을 먹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흰 옷을 입은 자들이 하늘에서 이미 영광을 받고 있는 중에 그들의 영광이 영광에서 영광으로 계속 새롭게 더해주시며 자라게 하시며 기쁘게 하시는 역사를 말씀합니다.
여기까지 계시록 7장은 끝나고 요한 계시록 8장 서두에서 일곱째 인과 일곱 나팔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다루어 나가는데 있습니다.
다음은 요한 계시록 8장 강해
1절) 어린양이 일곱째 봉인을 여실 때 하늘에 약 반 시간쯤 정적이 있더라. 본문 1절을 읽을 때 어린양이 여섯째 인까지 뗀 후에 순서상으로 일곱째 인을 떼시는 것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되면 요한계시록을 깨닫는 데에 혼란과 오류에 빠져서 계시록이 닫히고 맙니다. 계시록 6장에서 첫째 인부터 여섯째 인을 떼는 것은 환란의 전체 기간인 7년 동안 될 사건의 내용을 전부 예언해 주신 것입니다. 첫째 인부터 다섯째 인까지 떼는 것은 환란이 시작해서 삼 년 반 안에 될 사건을 예언한 것이고 여섯째 인을 떼는 것은 후 3년 반 안에 될 사건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7년 환란이 끝난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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