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칼럼 2월 둘째 주일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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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20-02-11 14:12본문
“당신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의 뒷모습이 더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어요”
지난주 월요일 성도 몇 사람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식사 중에 지난주일 설교 시간에 권사님의 간증을 하다가 갑자기 제가 강단에 나와서 춤을 추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웃기도 하였지만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제가 춤추는 중에 뒤로 돌았을 때 저의 등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왜 저의 앞모습 보다 뒷모습에서 눈물이 왈칵 터졌느냐고 물어보니까, 제가 새에덴교회 뿐만 아니라 복음의 가치와 한국교회의 영광성을 위해 등에 짐을 지고 가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저의 어깨가 감당하고 있는 무거운 짐이 느껴져서 눈물이 났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저는 근래에 다른 것은 그만두고 정권사님 일로 얼마나 무거운 짐을 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새에덴교회는 물론 한국교회를 위해 많은 짐을 지었습니다. 저도 우리 교회 안에서 우물 안의 개구리식 사역을 할 수 있지만 교회 생태계와 공적 사역에 대한 경종을 듣고 스스로 짐을 지고 십자가의 길을 간 것입니다.
그런데 힘들고 어려운 때 가끔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 꿈은 전혀 안 꾸는데 아버지의 꿈을 꿉니다. 그것도 아버지와 정면에서 마주보는 꿈이 아니라 쟁기를 짊어지고 논으로 가신다든지, 괭이나 삽을 들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는 꿈을 꿉니다. 솔직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서먹서먹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더구나 저의 아버지는 어렸을 적부터 소리를 잘 지르셨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희생하는 이미지로 기억되어 왔습니다. 아무리 뙤약볕이 비추고 비가 오는 날에도 괭이나 삽을 들고 논으로 가셨거든요. 저는 마루에 앉아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힘들 때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꿈을 꾸곤 했지요.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나도 쟁기를 들고 논으로 가야 한다. 괭이나 삽을 들고 사역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그런 저의 뒷모습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보고 느낀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성도들의 앞모습보다도 사명의 짐을 지고 가는 뒷모습을 볼 때 더 은혜스러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마치,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졌던 구레네 시몬의 등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훗날 구레네는 십자가를 졌던 어깨와 등을 사도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자랑했다고 합니다. 이 시대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사명의 짐을 짊어지고 가는 여러분의 어깨가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의 등 뒤가 오늘처럼 아름답고 듬직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어깨와 등을 생각하니 왠지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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