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성도 자신이 제단에 제물이 되어야 한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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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20-03-27 11:54본문
하나님의 말씀을 누가 들을 수 있는가?
편집인 정기남 목사
지난번에 이어서요한복음 6 : 59-7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생명, 깨닫지 목사는 자 심판
오늘 이 시대에 한국교회가 강단에서 전하는 목회자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진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지 못하고 타락한 목회자로 진리를 강단에서 전한다. 오염된 말씀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의 영혼이 오염된 말씀에 의하여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다행이도 하나님의 말씀, 진리로 무장되어서 바른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귀한 목회자들도 있다.
오직 하나님 편에서 무장되어 말씀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있다. 하지만 신앙인들 중에는 귀한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사실 귀한 말씀은 아무나 듣는 것은 아니다. 이런 부류의 신앙인들은 귀한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고 관심도 없다.
계 2-3장에서 예수님은 일곱 교회에 보내신 편지 내용에서 공통점은 맨 마지막 말씀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고 하셨다. 성령이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이 성령의 소리를 누가 들었는가, 세상 속에 빠져 있는 육적인 자들은 이 성령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육적인 자들은 이 성령의 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또한 볼 수도 없다.
우리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서 놀라운 영적 비밀을 알려 주셨건만 무지몽매한 저 인생들은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떠나 떠나고 만다. 왜 저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했을까요? 저들은 말씀을 듣기는 했어도 끝까지 육적인 모습을 버리지 못했다. 우리 예수님께서 그토록 영적 비밀을 자세히 가르쳐 주셨지만 저들이 깨닫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영적 사건이다. 여기에 육적인 것들을 벗어 던져야 한다.
육적인 쭉정이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어
육적인 것들을 던져버리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혼동을 가져온다. 그런 혼동에 빠져든 자는 믿어지는 것은 없고, 생각나는 것은 의문 뿐이다. 의문을 갖고 있으면 자신이 생각하기를 왜 예수를 믿는데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길까? 왜 복은 안주고 어려운 일만 닥치는가? 하고 의문만 품다 보니 유대인들처럼 결국은 예수를 떠나고 마는 것이다.
오늘 이런 신앙인들 중에는 자신이 예수님께 오병이어 떡을 달라고 소리치며 뒤따르던 그 무리들과 다를 게 없지 않는가? 여기서 우리가 저들의 말을 들어보자. “예수님 말씀이 너무 어렵다”고 한다. 저들의 소리는 육의 세계만 보고 예수를 따랐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적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말씀을 모르면 듣는 것도 힘들다. 이러한 말씀을 누가 들을 수 있겠는가?
첫 번째 : 영적인 자만이 말씀을 들을 수 있다. 59-6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하셨다. 오병이어의 사건으로 시작된 빵에 대한 말씀을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성경은 그들을 제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육적인 자가 영적 세계를 안다는 것, 그렇게 쉬운 건 아니다. 영적 세계를 모르는 육적인 신자들은 모여서 예배에는 관심이 없고, 수근 거리기만 할 뿐이다.
여기서 회당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성경 연구하고 기도하던 공공장소를 말한다. 오늘로 말하면 공공장소가 교회이다. 또한 여기서 말한 제자들은 12 제자들이 아니다. 이 제자들은 예수님이 직접 택한 제자들이 아니라 자기들이 자청해서 제자가 되겠다던 자들이다. 이런 제자는 수근 거릴 수 밖에 없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인자의 있던 곳이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의미하신 말씀이다. 이러한 사건을 본다면 너희가 믿겠느냐? 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그러한 사건을 보아도 너희는 믿지 못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답이 63절에 나와 있다. 육으로는 영적인 세계를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시작된 빵과 고기에 대한 비밀의 말씀은 끝이 났다. 그러나 무리들은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수근 거리고 있다. 이런 무리들 모습을 보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우리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여기 61-65절에서 잘 나타나 있다. 한 마디로 너희가 그런 자인 줄 알았다는 말씀이다. 놀라운 오병이어 기적으로 먹이시고 가르치셨지만 저들은 이 심오한 영적 말씀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나 어이없게 끝이 났다.
여러분 설교자가 목이 터지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성도가 은혜받았다는 말과, 무슨 설교를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성도가 있다. 어쨌거나 목회자가 바라는 것은 설교를 듣고 성도의 삶이 눈에 보이게 변화될 때 목사는 가장 기쁘고 보람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설교해도 변화되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성경에 등장하는 저 유대인들의 모습과 무어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능하신 우리 예수님의 이 귀중한 말씀을 설교를 통해 들었음에도 도대체 변화될 조짐이 없다. 왜 이토록 변화될 조짐이 없는가? 이유는 육의 세계를 떠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아니 세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아직도 주님의 말씀보다는 세상 살아가는 재미가 더 좋다는 것 아닌가? 61절에서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하고 물으셨다. 다시 말해서 “내 살이 참된 양식이고 내 피가 참된 음료라는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하는 질문이시다.
당신의 생각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정말 그런가요? 오직 예수님 위해 살겠다고 결심은 섰는데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니 손해 보는 것 같은가요? 교회에서 헌신봉사를 다하고 있는데 하지만 내 생활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기서 유대인들을 보자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어려운 말만 한다고 화를 내고 있다. 유대인들의 목적은 말씀에 있지 않고 빵에만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육적인 배만을 위해 빵에만 관심이 있지 주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들 중 어떤 이는 분명히 예수를 믿고 있다. 그러나 주님의 뜻대로가 아닌 내 뜻대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화가 난적 없는가요?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했는데 부자 된다고 했는데. 그런데 왜 이리 안 되는 걸까?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은 주님을 믿는 목적이 무언가요? 설교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 목적인 어디에 있나요? 새벽기도를 하는 목적, 철야기도를 하는 목적, 주일을 지키며 봉사하는 수고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목적인가요? 내 뜻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었나요? 우린 다시 유대인들 개개인의 목적을 보자, 유대인들 개개인은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을 왕 삼으려는 데 있다. 오늘 우리들 가운데 예수를 그렇게 믿고 있지는 않는가요? 그 믿음은 헛된 믿음이며 우리 예수님은 그런 자와 함께하시지 않는다. 그러한 목적을 갖고 주님께 나온다면 우리 예수님은 그를 만나주시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희생정신의 믿음이 목적이 아니라면 또한 세상 것에 자신의 생각의 줄을 매여 놓은 상태에서는 변화되지도 않고 변화 될 수도 없다.
삶이 변화되어라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도 변화되지 못한다. 62절 예수님이 “내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너희가 믿을 수 있느냐” 하신 이 말씀은 하늘로 예수가 올라가실 것을 본다고 해도 믿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구원받는 것 아니다. 교회 나와서 말씀을 들었으면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변화되기는 어렵겠지만 변화되는 것이 보여져야 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다. 예수를 믿으면 3가지가 변해야 한다. 말과 행동과 모습이 변해야 한다. 어떻게 처음부터 변화되고 처음부터 영적인 자가 되겠는가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부지런히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믿음이 성장 되어 가야 한다.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는 살리는 것은 육이 아니라 영이다. 그 영이 바로 말씀이고 말씀이 우리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변화되어야만 한다. 깨닫지 못하고 변화되지 못하면 우리들 또한 저 유대인들처럼 예수를 떠날 수밖에 없다.
육적인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져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육적인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래야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오게 되고 은혜가 되면서 자신이 주님을 위하여 살겠다는 각오가 생기면서 세상적인 것들을 끊고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는 복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철저히 부수어 뜨려야 한다. 무엇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로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부수어 뜨려야 한다. 다같이 자신을 죽이는 기도 이중인격인 자신의 가면을 벗기기 위해서 기도하자. 아멘
다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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