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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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20-03-31 20:14본문
누가 말씀을 들을 수 있는가?
말씀선포 편집인 정기남 목사
지난번에 이어서
요한복음 6 : 64~66
두 번째 : 아버지께 부름을 받은 자만이 말씀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않는 자들이 더러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며 또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기 때문이라. 또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도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그때부터 그분의 제자들 중의 많은 사람이 돌아가고 다시는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아멘.
예수님은 처음부터 많은 무리들 가운데 말씀을 믿지 아니할 것과 또 예수님을 배반하여 팔아넘길 자를 처음부터 다 아셨다고 하셨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 내가 믿는 게 아니다. 예수를 믿지 아니하고서는 말씀도 믿을 수 없고 예수를 끝까지 따를 수도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우리는 움직이고 있고 하나님의 택함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고 있는가? 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한 자들은? 바로‘육적인 떡이나 얻어먹기 위하여 따라다니는 자들이다. 자기를 팔자? 가룟 유다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인데 그 구원은 반드시 예수를 통해서 이루신다는 뜻이다. 교회 안에는 예수를 전혀 믿지 아니한 자들도 있다. 또 예수를 팔았던 가롯 유다 같은 자들도 있다.
마 13:30 “둘 다 수확 때까지 같이 자라게 두어라. 수확하는 때에 내가 거두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먼저 가라지를 함께 모아 불태우게 단으로 묶되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하시니라.” 아멘. 여기서 수확하는 때, 즉 추수 때는 세상 끝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알곡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수확 때까지 그대로 가라지를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말씀이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그러나 그가 믿음 안에 있는 자인지, 가짜 믿음을 가진 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세상 끝에는 확실하게 진짜와 가짜가 가려진다는 것이다.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날 때는 누가 진실로 예수를 따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오병이어 기적을 더이상 보이지 않고 어려운 말만 하자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예수를 떠나 가버렸다.
마지막 때도 복만 받으라는 말씀만 전하는 목사와 복만 추구하는 기복적인 성도는 마지막 때를 외치는 계시록과 같은 어려운 말씀에 적응하지 못하고 너무 어렵다며 그 말씀이 자신들의 신앙에 걸림돌이 된다고 예수를 떠나버리게 될 것을 가리킨다. 세상이 갈수록 편해지니까 예수도 이제 편하게 믿자고 한다. 하지만 편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주님은 오신다고 하셨다. (살전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하셨다. 육적으로 예수를 믿는 자의 특징은 예수를 편하게 믿자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고난을 싫어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따랐던 무리들의 목적은 편하게 살자는 것이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택함을 진실로 받은 자라면 예수를 위해 살아가게 되어있다. 예수를 위해 살아가는 길에는 반드시 고난이 동반되어 있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없다는 말은 없다. 오히려 예수를 믿는다면 고난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예수를 믿는 것 내 마음대로 믿는 것이 아니듯이 예수를 위해 당하는 고난을 우리 마음대로 받기 싫다고 안 받고, 받고 싶다고 받는 게 아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우리가 예수 믿고 가는 길 이미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신 길이고 우리가 당한 고난 이미 작정된 고난이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영광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고난도 각오하고 나아가야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영적 세계를 모르는 자는 고난 뒤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지 못한다 육적인 자는 세상 속에서 영광을 누리기를 원한다.
영적 세계를 모르는 자는 고난이 올 때 예수를 버리고 세상 속으로 떠나 버린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된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데 왜 성도들이 깨닫지 못하고 고난을 싫어하고 거부하고 교회를 떠나고 예수를 떠나버리는가? 엄격히 말해서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은 오병이어 무리처럼 예수를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는 자들이다. 아버지께 부름을 받은 자들은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해서 변화시키시고 예수를 위해 살아가도록 만드신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어 가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택함 속에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은 세상 소리보다 하나님 말씀의 소리가 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부름을 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 말씀이 자꾸만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말씀을 듣기가 괴로운 것이다. 육적인 소리만 듣기 좋아한다. 복 받으라는 소리만 나오면 아멘! 소리친다. 아버지께 부름을 받으신 여러분! 하늘의 소리에 듣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세 번째 : 제자의 삶을 사는 자만이 들을 수 있다.
67-71절?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하셨다.
이 말씀에서 예수를 따르던 그 많은 무리들은 다 떠나고 예수님 열두 제자 만 예수님 앞에 남아 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도 가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의 고백도 휼륭한 고백이었지만 더욱 중요한 말씀은 70절 말씀이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제자들이 똑똑해서 예수님 하신 말씀을 다 이해해서 안 떠난 게 아니다. 한 마디로 못 떠난 것이다. 왜? 예수님의 택함의 끈이 그들을 못 떠나게 한 것이다. 가룟 유다 까지도 못 떠난 것이다.
너희도 가려느냐는 이 말씀의 뜻은 제자들 마음을 떠보는 말씀이다. 시몬 베드로의 놀라운 고백 3가지 1.“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이제껏 하신 예수님 말씀이 영생의 말씀이다는 것이다. 2.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절대로 예수를 떠나지 않겠다는 뜻이다. 3.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다. 베드로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베드로가 똑똑해서가 아니다. 예수님의 택함을 받은 제자였기 때문에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적용할 수 있는가? 요 6:5절에 보면 큰 무리가 예수께 모여들었다. 왜 모여들었는가? 기적을 보려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무리에게 하늘의 비밀을 선포하셨다. 자신이 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셨는가? 이 땅에 왔는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하늘의 어려운 말을 듣기가 거북해도 무리는 떠나지 아니했다. 왜 떠나지 아니하셨을까?
또 다른 기적이나 떡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다 떠나 버렸다. 왜 떠났는가? 더 이상 예수께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떠났다. 육적인 자는 육적으로 무엇을 얻지 못할 때 떠나게 되어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중요한 한가지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대인들이 떠난 것이 마치 그들 스스로 예수를 떠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떠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부름심을 받지 않는 자는 언제인가는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있다. “주신 자도 여호와이지만 보내신 분도 여호와이시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면 절대로 인간 스스로 그 손길을 뿌리칠 수 없다.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한 영혼도 사단의 손에 빼앗기지 아니한다. 그러면 교회를 다니다가 교회를 멀리하고 떠나버린 자들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는 자들이다.
그러한 사실을 오늘 분문에서 예수님을 가르쳐주고 계신다. 우리는 보통 가룟 유다를 예수를 믿다가 나중에 잘못 된 자로 본다 그러나 성경은 가룟 유다는 처음부터 예수를 믿지 않는 자였다. 64절에 예수께서는 믿지 아니한 자들 중에서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고 하셨다. 제자들을 향해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까지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갈릴리 출신이었지만 가룟 유다는 아니었다. 가룟 유다에 대한 정보를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어쩌면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직접 택함을 받았지만 가룟 유다는 스스로 예수를 찾아 왔는지 모른다
다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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