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샘터 2월호 『숲길에서 느낀 고요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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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19-01-18 18:05본문
『숲길에서 느낀 고요와 평화』
지난 한 해 정말 숨 가쁘게 살아왔다. 그래서 내 자신을 한번 돌아보고 싶어 충북 충주에서 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이 운영하는 ‘깊은 산속 옹달샘’에 다녀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깊은 산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고요함과 평안함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 ‘걷기명상’ 코스는 참된 쉼과 깨달음을 주었다. 길은 사랑의 길, 감사의 길, 용서의 길, 화해의 길 등 네 코스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고도원 이사장이 직접 인솔하는 용서의 길을 걸었을 때는 내 마음도 주변도 참으로 고요해졌다. 잡념과 고뇌가 침잠하고 평화가 찾아왔다.
나 역시 성경 <창세기>의 말씀처럼 흙으로부터 나온 존재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생각할 때 산길도 함부로 밟을 수 없었다. 내가 밟고 있는 흙이 그 전에 보던 흙이 아니었다. 돌조각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도. 터키 갑바도기아(Cappadocia)의 신학자 닛사의 ‘그레고리의 교훈’처럼 겨울나무들이 나와 연결된 자연이요, 숨소리요, 생명이었다.
‘나무야, 너를 만나서 참 행복하구나. 이 자리에 있어줘서 고마워. 너도 겨울을 나는 동안 얼마나 춥고 외로웠니? 비바람, 눈보라가 칠 때 얼마나 힘들었어. 그래도 이렇게 산을 지켜주니 고맙기 그지없구나.’ ‘그래요, 옹달샘 프로그램에 참 잘 오셨어요.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이 자리에 서 있을게요. 그러니 언제든 찾아오세요.’
겨울나무와 무언의 대화를 나눈 뒤 뒤돌아서는 순간, 몇 년 전 내가 쓴 <나무와 소년>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나무는 소년을 기다렸습니다 / 그리움만큼 기다란 줄을 늘어뜨린 채 / 소년이 다시 그네를 타러 올 날을 /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 새싹이 돋아나던 봄이 가고 / 무성한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던 여름도 가고 / 한 잎, 한 잎 / 그리움에 지친 가을의 추억도 가고 / 이제, 그리움마저 퇴색한 하얀 겨울에도 / 나무는 홀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중략) 소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긴 그림자 석양녘에 드리우고 / 자기에게 돌아올 그 때까지….”
내가 쓴 시를 회상하며 봄이 되면 나무들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봄이 와서 나무가 새싹을 피워내고 풀잎들이 약동할 때 다시 이곳을 찾아와야지. 그때는 이 나무들이 나에게 뭐라고 말할까.’ 전쟁터와 같은 도시의 광장에서 포효하고 시대와 역사를 향해 격문을 쓰던 나에게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와 평화의 시간이었다. 나는 원래 저녁에 일찍 잠을 못 자는 사람인데, 그날 밤엔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들었다.
고도원 이사장의 배려로 50여 명의 청년 힐링캠프 프로그램에 참관을 해서 그들이 자신을 소개하며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고 꿈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것을 본 시간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꿈조차 꿀 수 없는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상처와 아픈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청년들도 깊은 산속 옹달샘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잠시 멈추고 마음의 쉼과 평화를 얻고 나면 다시 새로운 꿈을 가슴에 가득 채우고 변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만을 위한 꿈이 아닌, 이 세상을 향한 위대한 꿈 너머 꿈을 꾸게 된다는 것이다. 높은 산이 물을 멀리 흘려보내듯, 고도원 이사장은 고독한 거산이 되어 혼탁하고 방황하는 세상을 향해 깊고 맑은 사상과 정신의 샘물을 전하고 있었다. 그분이 정말 부러웠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깊은 산속 옹달샘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빈 가슴으로 거닐었던 깊은 산길이 그립다. 사람과 사람 사이, 아니 군중 속에서 가슴의 샘이 메마르고 상념의 대기가 탁해질 때마다 나는 ‘깊은 산속 옹달샘’을 떠올리리라. 그리고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도록 그 적막한 고요와 평화의 산에 파묻혀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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