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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제4장 사도영성 운동의 역사(24) 속죄의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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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1-0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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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사도영성 운동의 역사(24)

속죄의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영성 홍항표 목사.jpg

누가복음 211절에 보면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이심을 간결하게 표현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인하여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고통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죄 사함의 용서를 받게 되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죄 아래 있을 때는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되며, 그 어두움의 권세와 형벌의 고통이 극심한 괴로움이 됩니다. ‘죄 짓고는 살 수 없다는 말처럼 죄 아래의 삶은 고통과 두려움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속죄의 기쁨이 선포되었습니다. 죄악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값진 것입니다. 이 해방과 자유의 큰 기쁨이 우리의 생활 속에 항상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의 고백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 됨의 내적 증거는 기쁨입니다.

기쁨은 정신적 즐거움과 육적 쾌락과는 차원이 다른 본질적인 것이며, 소멸될 수 없고 소멸시켜서도 아니 될 성도의 삶에 기초가 되는 영적 생활의 활력소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구원받은 자로서의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승리자로서의 기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1,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10:3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1:2-3)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삶에 역경과 시련과 환난이 닥쳐와도 기뻐하라는 의미입니다. 성도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해야 하는 것은 고난과 징계 후에 있게 될 온전한 기쁨, 풍성한 그리스도의 성품이 열매 맺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바로 이 같은 기쁨의 생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사도영성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영생의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전도서 기자의 고백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3:1-8) 모든 사람에게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시간이 가면 늙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보다는 더 많은 슬픔과 불행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옛날부터 인생의 무상함을 한탄하여 왔고, 동시에 영원을 갈구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유한성에서 오는 절망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오래 전부터 철학과 종교에서는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기도 하였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의 윤회설도 바로 이 연구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 영생의 소망은 유한한 삶에서 오는 불안과 절망을 씻어줍니다. 이 영생의 소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유한한 인생이지만 감사하며 성실하고 값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영생개인이 죽음으로부터 또는 죽음에 이르는 어떤 영향으로부터도 예속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도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승리로 말미암아 영생을 약속 받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영생의 소망을 안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본래 죽지 않을 존재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죽어야 할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의 결정은 아직 유보된 상태였던 것입니다. 아담에게는 두 가지 길이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기대되는 죽지 않는 영생이었고, 다른 하나는 죄로 인한 죽음이라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처음 사람 아담은 생명대신 죽음을 선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죽음은 우리 인간을 지배하고 왕 노릇해 왔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심으로 우리에게 다시금 영생을 얻도록 해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 왕 노릇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함으로써 영생을 얻는 길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므로 영원한 죽음의 심판을 당하는 길입니다. 아담의 선택은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좌우했지만, 우리 각자의 선택은 영생과 영벌로 나누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소망하는 성도는 모든 죄와 슬픔과 고통이나 죽음으로부터 의를 이루신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입니다. 영생의 소망은 성도에게 새 힘을 공급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주의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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