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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아가 강해(10) 아 1:13~14절 신부가 인식하는 주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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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8-1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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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강해(10) 1:13~14

신부가 인식하는 주님은?

 

본지 부사장 조영만 목사.jpg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지난 한 주간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 주님 앞에 나아가 말씀을 먹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자아를 깨뜨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신부로 사셨습니까? 이 세상에는 자기 육체를 위해 사는 사람과 자기 영혼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뚜렷이 구별됩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 사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자기 영혼의 가치를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오직 육체를 위해 먹고 마시고 치장하고 세우고 개발하고 공부하고 투자하고 삽니다. 자기 영혼을 위해 사는 사람은 육체의 한계와 헛됨을 알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 주님 앞에 나아가 말씀을 먹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자아를 깨뜨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것을 목표로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육체를 위해 사는지 영혼을 위해 사는지 삶의 방식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어느 것에 더 사용하느냐가 바로 육체를 위해 사는지 영혼을 위해 사는지를 결정합니다. 앞으로는 점점 육체를 위해 사는 사람은 더 육체를 위해 살 것이고 영혼을 위해 사는 사람은 더 영혼을 위해 살게 되므로 교회 안에서도 뚜렷이 구별될 것입니다. 보이는 육체는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영혼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시고 바른 선택을 하시는 지혜로운 신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1:13절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요

지난 시간에 1:12왕이 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하였구나를 설명했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 주님 앞에 나아가 말씀을 먹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자아를 깨뜨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신부, 기억나십니까? 이런 단계에 이른 신부가 체험한 신랑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 무엇입니까? 몰약이 담긴 향기 나는 주머니를 술람미 여인이 품에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주님이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 되셨습니까? 몰약 향낭이 되시는 주님을 항상 마음에 품고 계십니까? 이 경험은 내주하시는 주님을 개인적으로 누리는 것, 곧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삶 가운데 적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 되신 것은 우리가 썩어질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 임금인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면서 물들지 않고 썩지 않고 향기로운 냄새, 곧 부활의 향기를 풍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몰약은 유향과 함께 성경에 등장하는 중요하고 귀한 향료의 하나입니다. 몰약의 귀중한 가치는 마태복음 2:11에 동방 박사들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 출애굽기 30:22에서 33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몰약의 용도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또 일러 가라사대 너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 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 오십 세겔과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대로 하고 감람 기름 한 힌을 취하여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찌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찌라 너는 그것으로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상과 그 모든 기구며 등대와 그 기구며 분향단과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그것들을 지성물로 구별하라 무릇 이것에 접촉하는 것이 거룩하리라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내게 거룩한 관유니 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 무릇 이와 같은 것을 만드는 자나 무릇 이것을 타인에게 붓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하라

 

몰약은 거룩한 관유를 만드는 중요한 향품입니다.

주님이 신부에게 몰약 향낭이 되시는 것은 자기를 깨뜨리고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하는 신부에게 거룩한 관유 곧 성령의 기름부음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관유 곧 성령의 기름부음은 아무에게나 붓는 것이 아닙니다. 3031~33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내게 거룩한 관유니 사람의 몸에 붓지 말며 이 방법대로 이와 같은 것을 만들지 말라 이는 거룩하니 너희는 거룩히 여기라 무릇 이와 같은 것을 만드는 자나 무릇 이것을 타인에게 붓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하라고 하심같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상징하는 거룩한 관유는 사람의 몸에 부어서는 안 되며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무릇 이와 같은 것을 만드는 자나 무릇 이것을 타인에게 붓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쳐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30절에 보면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라는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사람의 몸에 붓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이 아론과 그 아들에게는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옛사람이 처리되지 않은 신자에게 거룩한 관유를 부어서는 안 되며 옛사람이 처리된 구별된 거룩한 성도에게 부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 은사사역을 하는 교회에서는 참석하는 모든 자들에게 안수함으로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이 처리되지 않고 거룩하게 구별되지 않은 자들에게 붓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사모하는 신자들은 손쉽게 집회를 통해서나, 안수를 받음으로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부작용으로 집회시 머리를 심하게 흔들어 정신을 흐리게 하거나, 개짖는 소리를 내며 기어 다니고, 배꼽을 붙잡고 계속 깔깔거리고 웃기도 합니다. 더 심하면 발작을 하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거룩한 관유가 부어질 때 하나님의 거룩함이 나타나야 하는데 이런 모습들은 옛사람이 처리되지 않은 신자들에게 나타나는 좋지 않은 현상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에 붓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거룩한 관유 곧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 주님 앞에 나아가 말씀을 먹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자아를 깨뜨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신부에게 부어져야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은 겸손한 마음으로 매일 주님 앞에 나아가 말씀을 먹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자아를 깨뜨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신부가 되었기에 자신에게 나타난 주님을 몰약 향낭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자아 곧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죽이고 주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사신 다면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요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몰약은 변개치 않고 썩어지지 않는, 영원하신 주님의 생명을 말하며 그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만 아는 것이 아니라 향낭이 되어 다른 이에게도 주님의 생명이 자기와 함께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는 의미입니다. 114절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엔게디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피신했던 황무지인데 그곳이 주님과 함께 함으로 기름진 포도원이 된 것입니다.

 

다윗은 양치기 시절에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되었으나 그 기름 부음은 곧바로 영광과 축복이 된 것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의 시작이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후부터 다윗은 미친 사울 왕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피신한 곳이 엔게디 황무지였던 것입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바로왕의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출애굽 하였을 때 해방의 기쁨으로 즐거워하였으나 황무지 같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것 같이 기름부음 받은 다윗도 엔게디 황무지의 광야를 통과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우리에게는 죽었던 영이 살아남으로 성령님의 처소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중생, 곧 거듭남이자 홍해를 건너 광야로 들어간 것과 같습니다. 이때부터 엔게디 황무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긋지긋한 광야 곧 엔게디 황무지를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8: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8: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이 광야 곧 엔게디 황무지를 통과하지 않고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곧 엔게디 포도원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시험하시고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광야로 이끄신 하나님이 다윗을 [엔게디 황무지]로 이끄셨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엔게디 황무지]로 이끄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주님의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거듭난 여러분을 똑같이 엔게디 황무지로, 광야로 인도하십니다이 광야를 통과하고 엔게디 황무지를 통과하므로 자아를 깨뜨린 신부만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엔게디 포도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미 주님과의 첫 사랑을 회복하고자 지금까지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쳤고 결국에는 왕의 상에 앉아 자기 나도 기름이 향기를 토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주님을 찾는 갈망이 주님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제는 발견한 주님을 인식하는 수준까지 왔기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낭이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엔게디 포도원이 되셨습니까? 엔게디 황무지에서, 황무지와 같은 인생에서 자아를 깨뜨리는 훈련을 통해 주님이 기름진 땅, 풍요로운 땅, 풍성한 열매를 맺는 엔게디 포도원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은 비옥한 땅, 영적인 풍요인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가 되실 것입니다. ‘고벨화는 유대 지방에서 어린 아이들이 손톱에 물들이는 데에 사용했던 꽃인데, 자신을 치장하는 것과 자랑을 뜻합니다. 고벨화 송이란 겉으로 나타내고 드러내는 것이며 아름다움이 표출되는 것이며 향기로 나타나는 것이며 그 영적인 풍요로움인 엔게디 포도원이신 주님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가 소유한 재물과 능력과 외모와 지식을 자랑했는데 이제는 자신 안에 거하시는 주님만을 자랑하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벨화 송이입니다. 신부단장 하는 시온의 성도님들에게 주님은 내적으로 몰약 향낭이요, 외적으로는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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