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포도원(교회)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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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3-12-30 20:46본문
포도원(교회)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
◀ 계시의증언 : 정기남 목사(편집인/언부협 상임대표)
아 2:15-17 “우리를 위하여 여우들, 포도 넝쿨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 우리의 포도 넝쿨에는 부드러운 포도가 있음이라. 16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 것이요, 나는 그의 것이니 그가 백합꽃들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도다. 17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사라지면 돌아오소서,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은 벧엘 산 위의 노루나 어린 사슴 같나이다”. 아멘.
오늘 애청자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말씀이 주제는 “포도원을 망치는 여우들을 잡으라”는 내용입니다. 본문을 보셨듯이 포도송이가 제철을 만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있어 농부가 볼 때도 최상품 포도송이를 거둘 것을 생각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도 이때쯤 되면 어김없이 포도밭을 침범해서 포도와 포도 넝쿨을 갉아 먹고, 포도송이의 상품 가치를 떨어뜨리고 망치는 작은 여우들 때문에 괴로울 지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큰 여우들보다도 작은 여우들이 더 위험하다고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앞서 ‘신발 속의 모래’ 그러한 예화인데, 험난한 사막을 걸어서 횡단에 성공한 사람에게 모 언론사 기자들이 찾아와 사막을 횡단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뜨거운 태양 아래 물 한 방울 없는 광야를 외롭게 홀로 걷는 것이었느냐고 하자 그는 아닙니다하자. 기자는 또 묻습니다. 그러면 가파르고 험한 길을 고생하며 올라가던 것이었습니까? 또 다른 기자가 같은 내용을 들어 재촉하듯 묻자, 여행자는 ‘그런 것들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나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내 신발 속에 들어 있는 조그마한 모래였다’고 했다.
오늘 본문의 핵심 주제로 ‘포도원을 망치게 한 작은 여우를 잡으라’. 는 말씀과 같이 여행자의 신발 속에 작은 모래가 발바닥을 괴롭혔듯이 이 시대의 크리스천들에게도 신앙을 파괴하는 것은 하찮게 겨기기 쉬운 작은 죄들이라고 본다. 비록 사소한 작은 죄일지라도 여러분의 신앙을 뿌리째 흔들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굳건한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애청자 여러분! 포도원을 망치게 하는 한 작은 여우를 반드시 잡아야 하는데, 힘들다고 작은 여우를 잡지 않는다면 포도 수확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잡아야 한다. 포도원에 작은 여우는 무엇을 말하는가? 1. 성도 여러분의 영혼을 죽이게 하는 욕심을 가리킨다. 욕심이란 물욕, 정욕, 사욕을 말한다. 2. 혈기를 가리킨다. 3. 뒤돌아 보는 것이다. 4. 이간시키는 것이다. 5. 썩은 것(죄)을 좋아하는 것이다. 6. 참된 우리 교회를 망치게 하는 이단이나 악한 사상을 말한다. 예컨대 신신학, 그릇된 신비주의, 하비콕스의 해방신학과 같은 것들이다.
7. 우상 숭배, 간음, 시험, 원망이다. 설명을 한다면 고전 10:1~11절의 말씀을 보면 IS 광야 교회가 우상 숭배, 간음,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 원망하는 것, 이 네 가지 때문에 망했다. 교회 안에 우상 숭배나 원망하는 것, 음란 영이 들어오면 신앙의 열매는 다 떨어진다. 그러므로 위에서 설명한 위와 같은 요소들은 다 작은 여우들인데 이 작은 여우들이 포도원을 망치는 것이다. 여러분 각자의 몸이 포도 가지인데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있는데 각가지의 죄악의 요소들이 들어와서 열매인 신앙을 망치면 되겠는가? 그러기 전에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한다.
여러분을 망치게 하는 작은 여우들에 대해서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포도 줄기인 가지를 갉아먹고 열매까지 망치게 된다면 이제는 여우를 잡을 수 없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가룟유다가 여우였다(눅 22:1~6). 교회 안에는 불평하는 자, 원망하는 자, 하나님의 일을 비방하는 자, 시기 질투 혈기 부리는 자 등이 다 여우들이다. 분명코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여우를 가만 두면 포도원을 헐고 즉 망치게 하고 교회에 시험거리가 된다. 그러므로 여우를 용납하지 말고 잡아 내야 교회가 평안해 지고, 마음도 평안해 진다.
성도들이 마음을 고쳐야 한다. 그게 여우를 잡아내는 것이다.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불평도 떠나가고, 원망도 떠나가고, 술 취함과 방탕도 떠나가고, 우상 숭배도 떠나가고, 간음도, 시험도, 이단도, 사악한 사상도 떠나간다. 성령 받고 생각이 바뀌면 여우도 떠나가고 그 순간부터 믿음 생활도 신이나고, 마음도 부요 해지고, 교회도 잘 되고 성도들의 심령밭이 옥토로 변하여 포도원의 포도나무 줄기도 쭉쭉 뻗어 나가서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들의 신앙도 빛이 나고 윤기가 흐르며 교회는 더더욱 아름답게 되는 것이다. 아멘.
애청자 여러분! 다시한번 설명을 한다면 이 작은 여우, 작은 죄는 자신이 방심할 때, 또는 기도생활이 식었을 때, 봉사하는 생활이 식었을 때, 십일조, 감사 생활이 자신도 모르게 식어졌을 때, 작은 여우가 가만이 들어오는 것이다. 즉 작은 여우 작은 죄악이 들어오면 죄가 점점 더 커지면서 신앙을 몸땅 갉아먹어 치우기 때문에 급기야는 세상으로 빠지게 되고 죄의 종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여우, 작은 죄는 우리 마음을 노리고 있다가 영적생활이 느슨해 지면 이때다 하고 들어와 자리잡고 앉아서 사단 맘대로 조종하고 있기 때문에 죄가 큰 죄악으로 커지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죄악이 틈타지 못하도록 기도로, 찬송으로, 예배를 통해서 성령이 충만해져 있으면 작은 여우가 들어오지 못한다. 마귀로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거듭 말해서 우리를 넘어뜨리는 작은 여우는 작은 불친절, 작은 악담, 작은 거짓, 작은 불순종인데 이 작은 여우들이 틈타지 못하도록 기도로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언제 틈타고 들어올지 모르는 작은 여우를 조심하며 항상 깨어 있어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 인생의 아름다운 포도원을 망치게 하는 여우는 무엇인가?
1. 작은 여우는 열등감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가장 힘들 때가 있다면 열등감에서 오는 것이다. 이 열등감에 억눌러서 산다면 기쁨도 행복도 없는 공허한 가운데 아무런 낙도 없이 헛된 망상에 빠져 사는 것이다. 작은 여우가 들어와 있으면 하루하루의 삶이 열등감 속에 빠져있기 때문에 매사가 불행한 것이다. 애청자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혹 열등의식은 없는지요?, 만약에 열등의식이 그 마음 밭에 자리 잡고 있다면 자신에게 더 큰 불행이 닥치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성경에 마음을 밭이라고 했는데 여러분의 마음 밭에 이 열등감의 작은 여우가 도사리고 있다면 그 마음 밭에 자리하고 있는 열등감의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한다. 그 열등감의 작은 여우를 잡아내면 그 마음 밭에 축복의 장마비가 내리게 된다. 놀라운 해결점이 성경에 있다. 주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내 마음속에 모셔드리면 됩니다.
찬송 183장 1절 “빈들에 마른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아멘.
그렇다면 내 마음 밭에 열등의식을 갖게한 작은 여우는 어떻게 들어 왔을까요? 분명히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기도하면서 언제부터 열등의식을 갖게 되었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분명코 생각날 것이다. 타의든 자의든 그 원인은 있습니다. 계 2:4~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면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셨다. 어디서 너의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는지 생각하고 돌이켜서 즉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셨다. 즉 열등감의 해결책을 바로 알고 열등의식을 갖기 전의 원상태로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잃었을 때 우울증에 사로잡히게 되고 열등감에 빠져들게 되고, 급기야는 극한 선택으로 자신을 포기하는 불행한 일도 있다. 마음 밭에 작은 여우가 들어오면 자신이 파괴된다. 열매 맺고 있는 포도원에 작은 여우가 들어오면 신앙의 줄기인 가지를 갈아 먹고, 포도 열매를 갉아 먹는 등 다 망쳐 버린다. 그래서 작은 여우가 망치기 전에 잡아야 한다. 마음 밭 포도원에 작은 여우, 사단이 들어와 망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와 같은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즉 이 열등감은 하나님이 주신 병이 아닙니다. 모든 것들은 다 작은 여우 사단의 악한 짓들이다.
사단은 하나님과 우리들의 사이를 이간하는 작은 여우로 등장하여 열매를 망가뜨리고 있는 이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한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무너뜨리기 전의 우리의 신앙이 굳건해야 하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작은 여우로 인하여 신앙이 망가지고 넘어졌다면, 속히 회복하는 게 급선무이다. 신부의 자격, 정혼한 자는 그 정절을 지키는데 즉 믿음을 지키는데 혼신을 가해야 한다.
마치 성춘향이가 과거급제를 위하여 한양으로 떠난 이도령을 기다리며 어떤 유혹과 위험을 겪으며 감옥에 투옥되었어도 끝까지 절개를 지켰던 춘향이의 굳건한 마음처럼, 우리 또한 신앙의 정절을 치켜야 한다. 오늘 본문 아가서의 내용도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성숙된 사랑 이야기를 비유를 들어 말씀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이 깊이 무르익어 가는 그때 두 연인의 사랑을 훼방하는 것이 있었다.
여기서 술람미 여인은 두 사람 사이에 훼방을 놓는 것을 비유를 들어 ‘포도원을 망치는 작은 여우’라고 했다. 술람미 여인은 시적인 표현으로 ‘포도원을 가리키면서 포도원에 꽃이 만개했다는 것은 솔로몬과 술람미 두 연인의 사랑의 절정을 향하여 무르익어 가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두 연인 사이에 재를 뿌리는 것이 있는데 그게 작은 여우이다. 러브스토리가 무르익어 가는 포도원의 두 연인의 아름다운 사랑의 교재를 방해하고 있다.
여기 포도원은 두 연인의 아름다운 데이트 장소이다. 바로 여기에 작은 여우는 두 연인 사이를 훼방하고 고통을 주는 장애물을 의미한다. 우리 말 격언에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듯이 끼어들어서는 안 될 일도 끼어들어서 방해하고, 재를 뿌리는 아픈 상처를 주는 일이 있다. 여기 솔로몬과 술람미 두 연인의 러브스토리는 오늘 우리 성도들과 예수그리스도와의 사랑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단은 여우처럼 주님과의 첫사랑의 관계를 방해하기 위해서 하루 24시간 동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과 지속적으로 깊은 사랑의 교재를 갖기 위해서는 신앙의 방해세력인 여우를 잡아야 한다. 여기서 작은 여우는 위에서도 언급을 해드렸듯이 우리가 하찮게 여겨지는 작은 죄를 가리킨다. 이렇게 작은 죄악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경고하기를 고전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도다. 너희는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인 줄 알지 못하느냐?’ 그랬고, 갈 5:9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하느니라’. 하였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하듯이 하찮게 여기는 작은 죄악 하나가 사람들의 양심을 마비시키게 되면 큰 죄악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예수그리스도와 지속적으로 깊은 사랑의 교재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작은 여우’와 같이 내 마음 밭에 포도원을 황폐케 하는 죄악의 요소들을 그 모양이라 할지라도 과감하게 끊어야 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축복의 생활을 하게 된다. 아멘.
오늘 본문 아 2:15절을 보면 술람미 여인이 포도 넝쿨을 망치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는 요청을 솔로몬에게 하고 있다. 아 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들, “포도 넝쿨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 우리의 포도 넝쿨에는 부드러운 포도가 있음이라’. 고 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 성도들이 죄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 힘으로는 안 된다. 내 지식 가지도 안 된다. 최 첨단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 알파고라 할지라도 안 된다. 죄악을 극복하지 못한다. 우리 성도들은 이 죄악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의 구주가 되시며 억만 가지 죄악에서 우리를 구속해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사 27:3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 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내 영혼의 포도원을 지켜주시는 분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예수그리스도만이 가능하십니다. 아멘. 나와 여러분은 내 영혼을 끝까지 지켜주시며 나의 아버지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어려운 난관도 극복해나갈 것을 기원합니다. 아멘.
끝으로 오늘 본문 아 2:16~17절을 보면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 것이요, 나는 그의 것이니 그가 백합꽃들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도다. 17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사라지면 돌아오소서,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은 벧엘 산 위의 노루나 어린 사슴 같나이다’. 아멘
솔로몬과 술람미와의 관계는 우리 예수님과 우리 성도들 나와의 관계를 말해 주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 것이요’ 우리가 부부간의 이런 고백을 해보십니까? 나의 사랑하는 당신은 내 것이요, 또한 ‘나는 그의 것이니’ 그랬다. 그가 백합꽃들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도다. 했다. 우리들 또한 예수님 앞에 백합꽃들임을 기억합시다. 그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도다. 라고 했다. 아멘.
다시 말씀을 해석한다면 여기 16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이는 예수그리스도’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성도인 우리에게 속하셨고, 성도인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 속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는 성도의 주시요, 성도의 생명이시며, 기업이십니다. 또한 성도인 우리는 예수님의 것, 예수님의 기업이다. 예수그리스도는 피로 값 주고 우리를 사셨으며, 주님의 소유로 삼으셨다.
그리고 백합화는 성도들의 마음 밭에 피어나는 백합화를 말하며 그 꽃이 향기를 날리는 것이다. 또한 성도는 가시밭의 백합화인데 가시에 찔림을 받을수록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는 성도를 찾아가셔서 먹이시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 2:17절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사라지면 돌아오소서,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은 벧엘(베데르)산 위의 노루나 어린 사슴 같나이다’. 아멘. 이는 술람미 여인의 고백이다. 여기서 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사라지면 돌아오소서, 라고 했는데 여기서 ‘날이 기울고’ 이 뜻은 남은 때가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날이 기울었다는 것, 그림자가 사라지면 돌아오소서, 라고 했는데, 이는 환난이 온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마지막 때가 되면 개인에게도 종말(임종)이 닥치고, 고난이 오고, 그러면서 말세에 대환난이 온다고 했다(마 24:3-22).
당신은 벧엘(베데르) 산 위의 노루나 어린 사슴 같나이다. 라고 한 것은 성도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심정과 태도를 나타낸다. 벧엘(베데르)은 이별의 뜻을 가리킨다. 벧엘 산 위의 노루나 어린 사슴 갖나이다. 즉 어린 사슴들이 낮에는 산에서 놀다가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사라지면 서로 이별하고 각각 자기 처소로 찾아 들어간다. 이와 같이 세상 끝날에도 예수님은 성도를 찾아오시고 성도는 예수님을 찾아간다.
지금은 이 시대를 보면 익히 잘 알고 있듯이 지금 세상은 갈수록 악이 점점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 시대는 우리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임을 알 수 있다. 오늘 이 방송을 애청하고 있는 성도 여러분은 머지않아 재림하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하여 기름준비 다 해놓고 기다리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살아지면 신랑되시는 우리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애청자 여러분 우리 모두가 우리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일시에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채로 공중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잘합시다. 할렐루야!
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리고 나서 살아 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올라 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아멘.
오늘 우리 포도원을 망치는 작은 여우들을 잡으라는 말씀을 주요 제목으로 함께 보고 듣고 상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끝으로 솔로몬과 술람미 두 연인의 말씀을 들으면서 결국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깨달으면서 마지막 17절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해 말씀을 맺었습니다. 다음 시간까지 건강하시길 기도드리며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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