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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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11-29 09:25본문
아가 강해(25) 아 4:1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3주 전 광야생활을 통과하여 연기 기둥이 되고, 주님을 태우고 다니는 가마, 주님의 인성을 상징하는 레바논나무, 구속을 상징하는 은 기둥, 부활과 믿음과 신성을 상징하는 금 바닥, 승천하셔서 왕권을 상징하는 자색 담이 된다면 주님의 머리에 씌운 면류관이 되실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기억나십니까? 이 면류관은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이 주님의 머리에 씌우는데 그 모친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를 통해 성도들을 정결한 처녀로 그리스도에게 중매함으로 그리스도의 머리에 씌운 면류관, 곧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교회를 이끄는 목사를 먼저 연단하시고 훈련하셔서 신부로 단장케 하시므로 그 뒤를 따르는 양들도 함께 신부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 1:8절에도 주님의 신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 찌니라”고 하셨습니다.
눅 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고 하심같이 주님의 길을 따르는 저를 본받아 열심히 따라오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정결한 처녀로 성장하여 그리스도에게 중매됨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기 전까지는 저의 양육을 받아야합니다. 이것이 주님이 저를 시온교회 담임목사로 세우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잘 양육 받아 정결한 처녀로 성장하여 그리스도께 중매됨으로 주님과 하나가되면 주님이 직접 가르치시기에 저의 양육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때부터는 저와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와 동역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저의 양육을 받으십시오!
김병미 전도사님이 저의 양육을 받고 잘 성장하여 지금은 제 동역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양육을 받는 과정이 없었다면 어떻게 지금의 동역자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겸손하게 양육 받고 질문하고 순종하므로 이 자리까지 온 것입니다. 혹시 시온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면서 자기가 누구의 양인지 모르는 성도가 계십니까? 누구에게 양육을 받아야하는지 모르는 분이 계십니까?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양과 목자의 관계인데 이것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창조주와 자기를 비기려고 했던 사탄의 교만함이 성도들에게도 들어와서 자신이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의 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렇게 말할 분도 계실 겁니다. “내가 왜 목사님의 양입니까? 주님의 양이지?” 이 생각에 미혹된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생각은 목사와 양의 관계를 끊고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지게 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방해합니다.
예레미야 3: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신약에서도 장로인 목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벧전 5:1~4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목사에게는 양무리를 잘 치면 목자장 되시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저도 이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여러분을 위해 생명을 바칠 것입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양과 목자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여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양이 목자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양이 목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양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지금까지 이 관계가 명확치 않아서 아직 저와 하나가 되지 않음으로 은혜 받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주님의 뜻이 저와 여러분이 한 마음, 한 뜻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 저와 여러분이 하나가 되기를 강조하는 것은 저를 높여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한 단체의 몸인 신부가 되는 비결입니다. 주님은 조영만 목사 혼자서 신부가 되길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시온교회 전체가 신부가 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서로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왜 저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가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 하신 기도입니다. 요 17:21,22“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제 저와 하나가 되시겠습니까?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러 주님의 신부가 되시겠습니까? 엡 4:11~13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큰 부담을 가졌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개개인의 신부가 아니라 한 단체의 몸인 교회가 신부가 되길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몇 몇의 신부가 아니라 교회 전체가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자라야 합니다. 부족한 지체는 채워지고 넘치는 지체는 양보하므로 한 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마지막 때에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이 고전 12:12~31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교독하시겠습니다. 이것이 저희 시온교회에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에 참으로 막막합니다. 언제 이런 이상적인 교회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을 의지하고 함께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아가 4:1 절입니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3:1,2절에서 주님 안에서 안식하던 신부는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주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다가 주님의 임재를 놓치는 징계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임재를 찾아 성중에서 돌아다니며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 찾으나 찾지 못하고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신부들에게 물어도 찾지 못해 그들을 떠났을 때 다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첫 사랑의 회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그 후에 신부는 연기 기둥이 되고, 주님을 태우고 다니는 가마, 주님의 인성을 상징하는 레바논나무, 구속을 상징하는 은 기둥, 부활과 믿음과 신성을 상징하는 금 바닥, 승천하셔서 왕권을 상징하는 자색 담이 되어 주님의 머리에 씌운 면류관이 되었습니다.
이 단계까지 성장한 신부에 대한 주님의 8가지의 칭찬은 이 단계를 이루기까지의 신부의 성숙한 상태를 말해줍니다. 곧 주님이 하신 8가지의 칭찬이 신부에게 이루어져야 비로소 주님의 머리에 씌운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이것이 첫 번째 칭찬과 신부의 성숙한 상태입니다. 뭐가 어여쁘고도 어여쁩니까? 바로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기에 어여쁘다는 것입니다.
너울은 신부가 얼굴을 가리우는 면박입니다. 면박은 신부가 혼인식을 마치고 그 밤에 신랑이 벗겨주는 것으로 정조와 순결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너울에 가려진 얼굴은 오직 주님을 위한 눈과 귀와 입과 코와 머리가 되어야합니다. 그 중에 신부의 눈은 비둘기 같다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성령님을 상징하며 순결의 상징입니다.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이와 같이 신부의 눈은 순결한 성령님을 닮아 모든 것을 성령님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 그 능력이 바로 주님을 보는, 주님의 얼굴을 보는, 주님의 마음을 보는 통찰력이라는 것입니다.
이 눈은 오직 주님만을 위한 눈이며 주님을 보기 위한 눈입니다. 그래서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라고 한 것입니다. 눈은 마음의 창인데 여러분의 눈은 지금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것이, 여러분이 바라는 것이,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지금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까? 신랑되신 주님이 너울을 벗겨주기를 바라고 계십니까? 그래서 주님의 얼굴을 보기 원하십니까? 주님이 하셨던 일들을 보고 그 일을 여러분도 하기를 바라십니까? 완성된 신부의 모습을 보고 그런 신부가 되기를 바라십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우리가 눈으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바라는 것들이 우리의 믿음이기에 실상으로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비둘기의 눈은 좌우를 살필 수 없고 오직 앞만 본다고 합니다. 그 모친이 주님의 머리에 씌운 면류관 곧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 위해서는 좌우를 쳐다보지 말고 오직 앞서 가신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이 말씀은 주님이 신부에게 하신 두 번째 칭찬과 신부의 성숙한 상태입니다.
신부의 머리털은 주님을 향한 신부의 헌신과 순복하는 의지를 말합니다. 여자의 긴 머리털은 의지를 굴복한다는, 곧 자기의 머리를 가린다는 의미로 자기에게 도리어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여자는 자기의 긴 머리털로 머리를 가리므로 자기의 머리는 자신이 아니라 신랑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머리를 가리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머리가 아니라 주님이 여러분의 머리라는 사실을 표현하고 계십니까?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자기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주님께 굴복하는 것으로 표현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부의 영광입니다. 오직 신부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만이 주님께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굴복할 수 있습니다. 머리 민 여자는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같이 자기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주님께 굴복시키지 않는 신부는 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본문에서 신부의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습니다.
길르앗산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산으로 야곱이 20년 동안 삼촌 라반의 집에서 연단을 받고 거부가 되자 라반이 안색이 변했을 때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명령하셔서 라반 집을 도망쳐 이른 곳입니다. 길르앗산은 풍성한 물로 인해 비옥한 땅이요 목축하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이곳은 야곱이 라반의 추적을 받고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라반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라반의 마음을 바꾸신 은혜의 장소입니다.
또 이 산에서 돌로 무더기를 쌓고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고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취하면 사람은 우리와 함께할 자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너와 나 사이에 증거하시느니라”는 증거를 삼았습니다. 이렇듯 길르앗산은 풍성함과 은혜를 상징하고 홍해가 애굽과 광야의 경계를 정한 것같이 세상과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어 세상은 신부에 대해 죽고 신부는 세상에 대해 죽었음으로 오직 주님만이 신부를 책임질 것을 증거 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대해 죽고 세상은 여러분에 대해 죽어야만이 하나님의 풍성함과 은혜를 받게 되고 주님이 여러분을 책임지시게 될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주님께 의지가 꺾인 신부의 머리털로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와 같은 것입니다. 염소는 원래 천방지축인데 길르앗산 기슭에 무리가 누워있는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이것은 신부가 세상에 대해 죽고 세상은 신부에 대해 죽으므로 하나님의 풍성함과 은혜를 받게 되고 주님이 신부를 책임지므로 이제 의지가 완전히 꺾인 모습입니다.
천방지축 무리 염소가 길르앗산 기슭에 질서를 맞춰 길게 누워있는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이 모습이 신부의 머리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술람미 여인이 주님께 받은 두 가지 칭찬과 성숙한 모습에 도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너울 속에 있는 여러분의 눈이 비둘기 같고 여러분의 머리털은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으므로 주님께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는 칭찬을 받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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