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아가강해(62)“아 7:10~12” 세상과 교회와 성도를 위한 신부의 사역
페이지 정보
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10-17 21:42본문
세상과 교회와 성도를 위한 신부의 사역
지난 한 주간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 내려서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는 주님이 원하시는 세 가지 사역을 이뤄 잠자는 자들을 깨우는 신부가 되셨습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세 가지 사역인 성도들을 양육하는 것과 성령님의 능력을 자기 영으로 나타내는 것, 그리고 주님과의 친밀함을 유지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을 지키고 죄와 사탄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이것을 에덴동산의 회복이라고 말씀드렸고, 주님께 드릴 황금과 몰약과 유향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십니까?
에덴동산의 회복이나 주님께 황금과 몰약과 유향을 드리는 것이 자기 마음을 지키고 죄와 사탄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이 원래 원하셨던 의를 소유함으로 결국에는 주님과의 친밀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친밀함이 깨진 원인이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죄와 사탄을 다스리지 못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이기에 다시 주님과의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을 지키고 죄와 사탄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느 누구도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는 자기 마음을 지키고 죄와 사탄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소유함으로 주님과의 친밀함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는 죽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나님에 대해서도 죽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주님과 친밀함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죄를 하나라도 가지고 있는 한, 죄로 인해 양심에 가책을 받고 있는 한 주님과의 친밀함을 가질 수도, 유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죄는 여러분과 하나님을 분리시킵니다. 이것이 사망입니다. 사망은 서로 교통이 없는 것입니다. 관계를 맺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교통하고 있습니까?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아니면 분리되어 있습니까? 분리되어 있다면, 전혀 상관이 없다면 사망에 처한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교통하고 있다면, 관계를 맺고 있다면 생명가운데 있는 것이고 항상 기뻐하지 말라는 사탄의 말과 교통하고 있다면, 관계를 맺고 있다면 사망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생명가운데 있습니까? 아니면 사망가운데 있습니까? 지금 순종하지 못하는 모든 말씀에 대해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죽어 있다는 사실을 성령님이 알려주셔야 진정으로 주님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는 간절함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간절함이 없이 주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여전히 주님과 분리되어 있고, 상관이 없고, 죽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죄인이요 죽은 자임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고 하나님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고, 상관이 없고, 죽어 있음으로 하나님과 교통이 없는 신자들에게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은 것이고 결단코 영생을 잃지 않는다”고 가르치니 누가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겠습니까?
마 23: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거짓 선지자 자신도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고, 상관이 없고, 죽어 있으므로 하나님과 교통이 없는데 신자들을 어떻게 좁은 문, 협착한 길로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 협착한 길로 신자들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주님이 원하시는 세 번째 사역인 주님과 친밀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원하시는 두 번째 사역인 성령님의 능력을 자기 영으로 나타내는 것과 그로인해 성도들을 양육하는 주님이 원하시는 첫 번째 사역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 말씀하신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사역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부편에서는 거꾸로 세 번째, 두 번째, 첫 번째 사역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전 시간에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 내려서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는 말씀을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는 주님이 원하시는 세 번째 사역인 주님과의 친밀함을 유지하는 것이고
‘미끄럽게 흘러 내려서’는 주님이 원하시는 두 번째 사역인 성령님의 능력을 자기 영으로 나타내는 것이고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는 주님이 원하시는 첫 번째 사역인 성도들을 양육하는 것이라고 설명 드린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지금 신부는 주님이 원하시는 세 가지 사역에 대해 즉각적인 순종을 보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 7:10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여러분이라면 주님이 원하시는 세 가지 사역을 언제부터 시작하시겠습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당신 나 사랑해요?” “응 당연하지”“그럼 내 소원 딱 3가지만 들어줄래요?” “어 그래 말해봐” “첫 번째는 나 해외여행 한 번 시켜주고요! 두 번째는 강남에다가 빌딩하나만 사주고요! 세 번째는 자가용 비행기 한 대만 사주세요!” 아내의 부탁에 어떤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그래! 당장에 해주지 뭐, 내가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난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이 원하는 데로 해 줄게!” “아 저도 이러고 싶습니다! 아직 이런 큰 부탁은 들은 적도 없지만요! 능력만 된다면 뭘 못해 주겠습니까?” 그런데 “해외여행은 요즘 내가 너무 바빠서 안 되고, 강남에 빌딩은 요즘 부동산이 하락이라 큰 손해 볼 것 같고, 자가용 비행기는 당신이 조정도 못하는데 그냥 내 차 타고 다녀”라고 한다면 실망이 크시겠죠? 더더욱 “이 여자가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해외여행? 뭐 강남에다가 빌딩하나? 자가용 비행기 한 대? 뭐 잘못 먹었어?”라고 한다면 더 실망이 크시겠죠? 그럼 사랑한다고 말하지나 말지!
지금 신부는 주님이 원하시는 세 가지 사역에 대해 즉시로 순종을 보입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모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비우고 주님으로만 채운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는지! 왜 천사들을 만드셨는지! 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는지! 왜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지! 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는지! 왜 아담과 하와가 뱀에게 속아 선악과를 따먹을 때 말리지 않으셨는지! 왜 여자와 뱀과 원수가 되게 하시고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원수가 되게 하셨는지!
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는지! 왜 성령님이 오셨는지! 왜 사람을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셨는지! 왜 천년왕국이 이 세상에서 시작되는지! 아시겠습니까? 여기에 답을 가지고 계시다면 주님이 얼마나 여러분을 마음에 두고 애틋하게 생각하며 그리워하는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비우고 주님으로만 채우기 위해 주님을, 주님의 뜻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신부는 주님에 대해 “주님은 내게 속했고 나는 주님께 속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이 자기중심적인 고백이라는 것을 다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조금 더 성장한 후에 신부는 주님에 대해 “나는 주님께 속하였고 주님은 내게 속하였다”고 말함으로 처음 고백과 선후가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신부는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라고만 하며 주님이 자신에게 속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 비로소 신부는 전혀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 주님과 하나를 이룬 것입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주님과 하나를 이룬 상태의 믿음은 자신과 자신의 뜻이 사라지고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 신부의 체험이 사도 바울의 체험과 같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도 바울 자신과 자신의 뜻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의 뜻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 바울을 사랑하사 바울을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주님이 자신을 마음에 두고 애틋하게 생각하며 그리워하는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원함을 버렸습니다. 곧 자신을 버리고 주님으로 채운 것입니다. 주님도 저와 여러분을 위해 자기와 자기의 뜻과 원함을 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을 위해 자기와 자기의 뜻과 원함을 버려야 합니다.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42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주님이 자신의 원함을 다 버리시고 오직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함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부활에 이르신 것같이 저와 여러분도 자신과 자신의 뜻과 원함을 다 버리고 오직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할 때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고후 4: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의 생명이 여러분 몸에 나타나길 원하십니까? 주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여러분 몸에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십시오!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자신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을 믿고 삶 가운데 적용하는 것입니다. 화내지 말라는 주님의 생명이 여러분 몸에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화내는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실을 믿고 장사지내십시오! 그러면 화내지 말라는 주님의 생명이 여러분 몸에 나타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님의 생명이 여러분 몸에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실을 믿고 장사지내십시오! 그러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님의 생명이 여러분 몸에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 신부는 주님이 자신을 위해 주님의 뜻과 원함을 버리기까지 자신을 사모한 사실을 알았기에 비로소 자신과 자신의 뜻과 원함을 버림으로 주님께 속한, 주님과 하나를 이룬 참 신부가 된 것입니다.
아 7:10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자신을 사모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안심과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도 염두해 두시기 바랍니다. 약 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시기하기까지 여러분을 사모하십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을 마음에 두고 애틋하게 생각하며 그리워하시므로 여러분이 다른 대상을 사랑할 때 시기하십니다. 성령님의 시기는 거룩한 분노를 일으키므로 간음하는 신부를 대적합니다. 약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그래서 이 단계까지 이른 신부는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는 고백을 통해 자기 자신은 없어지고, 주님 외에 다른 대상에게 관계된 것 없이 오직 주님만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는 담대하게 주님께 요청합니다. 아 7:11,12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찌기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아가 4:8절에서 주님은 신부에게 “나의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고 했었는데 이제 주님과 하나를 이룬 신부의 입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신부의 상태는 이미 주님과의 친밀함을 유지하고 성령님의 능력을 자기 영으로 나타내고 성도들을 양육하는 주님이 원하시는 세 가지 사역을 이뤘기에 본격적인 사역을 우리가 함께 곧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것입니다. 신부는 어디서 주님과 함께 사역을 시작합니까? 먼저는 들판인 세상에서와 동네인 교회에서, 그리고 포도원인 성도들에게 시작합니다. 들판인 세상에 나가면 그 안에 동네인 교회가 있고 그 교회에 포도원인 성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역을 주님과 함께 일찍이 일어나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역의 목적은 세상과 교회와 성도 개인입니다.
아 7:12 “우리가 일찌기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아 6:11절에서 주님의 4가지 영광이 된 신부는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라는 말씀같이 힘든 환경과 상황을 이겨나가는 연약한 신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신자의 인격의 미덕이 옳은 행실로 나타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졌기에 호도 동산 같이 아직 겉사람이 깨어지지 않은, 아직 자아 처리를 하고 있지 않은,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지 않는 교회로 신부 혼자 내려갔었는데
지금은 주님과 함께 포도원인 성도에게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신부는 이 사역을 통해, 세상과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사역을 통해, 거기서 주님께 향한 자신의 사랑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모함을 알았기에 주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리고 주님께 속한 신부의 사랑은 세상과 교회와 성도를 향한 사역을 통해 주님께 드려집니다.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지금까지의 신부로 성장하여 세상과 교회와 성도를 향한 사역을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고 있다면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오늘 선포된 말씀을 통해 주님이 시기하기까지 여러분을 사모하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려 주님과 함께 세상과 교회와 성도를 향한 사역을 시작함으로 여러분의 사랑을 주님께 드리는 신부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