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아가강해(63)(아 7:13) 자기 들보가 뽑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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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10-25 07:17본문
자기 들보가 뽑힌 신부

지난 한 주간 주님이 시기하기까지 여러분을 사모하고,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려 주님과 함께 세상과 교회와 성도를 향한 사역을 시작함으로 여러분의 사랑을 주님께 드리는 신부가 되셨습니까? 지금 신부의 단계는 주님과의 친밀함을 유지함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자신의 영으로 나타내고 그로인해 주변의 성도들을 양육하는 수준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신부는 아가 7:1~5절에서 주변의 신실한 성도들로부터 발과 넓적다리와 배꼽과 허리와 두 유방과 목과 눈과 코와 머리와 머리털에 대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가 7:6~9절 전반부에서는 주님으로부터 키와 유방과 콧김과 입에 대한 칭찬을 받자마자 신부는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 내려서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는 고백을 드린 것입니다. ‘이 포도주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는 주님이 원하시는 세 번째 사역인 주님과의 친밀함을 유지하는 것이고 ‘미끄럽게 흘러 내려서’는 주님이 원하시는 두 번째 사역인 성령님의 능력을 자기 영으로 나타내는 것이고 ‘자는 자의 입으로 움직이게 하느니라’는 주님이 원하시는 첫 번째 사역인 성도들을 양육하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기억하십니까?
신부는 주님이 원하시는 세 가지의 사역을 들판인 세상에서 동네인 교회에서 포도원인 성도들에게 시작합니다.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고 한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을 주님이 원하시는 세 가지 사역을 세상과 교회와 성도들에게 함으로 주님께 드리겠다는 고백입니다. 결국 신부는 자신을 향한 주님의 사모함을 깨달았기에 주님께 속하여 하나가 되었고, 이제는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주님과 함께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 신부의 상태는 자기 자아가 없습니다. 자기의 원함도 바램도 예전에 자기에게 속했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다 비워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아가 없습니까? 자기의 원함과 바램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성취되셨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자기 자아 곧 자기의 원함과 바램을 가진 상태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말씀입니다. 자기 자아 곧 자신의 원함과 바램이 없는 상태가 되어야 순종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물론 다른 말씀들,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도 자기 자아 곧 자기 원함과 바램을 가진 상태로는 결단코 순종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자아 곧 자기 원함과 바램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염려하십니까? 자기 자아 곧 자기 원함과 바램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불평하십니까? 자기 자아 곧 자기 원함과 바램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항상 기뻐하지 않습니까? 자기 자아 곧 자기 원함과 바램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쉬지 말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자기 자아 곧 자기 원함과 바램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범사에 감사하지 않습니까? 자기 자아 곧 자기 원함과 바램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마음이 상하고 불편합니까? 왜 화가 나고 짜증이 납니까? 다 자기 자아 곧 자기 원함과 바램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프로에서 부부가 나와 자신들의 속 얘기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섬김과 순종에 대해 자랑을 시작했는데 사회자가 남편에게 묻습니다. “이렇게 남편을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하는 아내가 있어서 참 행복하시겠습니다!” 남편이 말합니다. “전혀 아닙니다. 제 아내는 단 한 번도 제 말에 순종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전 불행합니다.” 아내와 사회자가 다 깜짝 놀랐습니다. “왜 그렇죠?” 사회자가 물었습니다.
“제 아내는 자기 뜻과 생각으로 저를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했기에 그렇습니다. 한 예를 들자면 회사에서 돌아와 맛있는 수정과 냄새가 나길래 한 잔 달라고 했더니 저녁 먹고 마시라는 것입니다. 저는 당장에 먹고 싶은 데요! 매사가 그렇습니다. 모처럼 라면이 먹고 싶어서 끓여달라고 하면 라면은 몸에 해로우니 된장국을 먹으라고 하고, 생일날 무슨 선물을 갖고 싶냐고 묻길래 시계를 사달라고 했더니 핸드폰을 사온 겁니다. 제 아내는 제가 원하는 대로 해준 적이 없고 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한 것입니다.”
전에는 이 예화를 들 때마다 자기 식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남편을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한 아내만 탓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간에는 사회자에게 자신의 아내에 대해 “제 아내는 단 한 번도 제 말에 순종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전 불행합니다.”라고 말한 남편을 통해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통해서입니다. 왜 남편이 불행했을까요? 과연 자신의 뜻과 생각에 맞춰주지 않고 자기 식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남편을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한 아내 탓입니까?
누구도 탓할 것이 아닌 바로 남편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남편이 자신의 뜻과 생각을 죽였다면, 자기 원함과 바램을 죽였다면 도리어 남편을 자기 식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한 아내로 인해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내도 변화되어 자기 식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남편이 원하는 대로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하는 아내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불편하게 했던 모든 원인이 환경과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고 제 자신에게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 원함과 바램이, 제 자아가 저를 상하게 하고 불편하게 했던 것입니다. 제 원함과 바램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기 방법대로, 자기 능력을 의지하고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부끄러움을 끼치게 합니까? 누가 마음을 상하게 합니까? 불쾌하게 합니까? 화나게 합니까? 이 모든 원인이 자기 바램과 원함 곧 자기 자아 때문입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분이신데, 주님이 여러분 안에 사신다면 상한 갈대 같은 상대의 허물과 죄가, 꺼져가는 심지와 같이 눈을 따갑게 하는 상대의 허물과 실수가 여러분을 상하게 하고 불편하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다 자기 자아 곧 자기의 원함과 바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다 죽인다면 식물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아 곧 주님의 원함과 바램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자아 곧 주님의 원함과 바램을 가지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기에 우리를 향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수년 전에 제 원함과 바램을 가지고 제 딸 예라를 보니까 여간 불편함이 많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의 탓을 제 딸의 부족한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요즘은 제 딸의 부족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불편함이 없습니다. 제 딸이 완벽해져서일까요? 아닙니다. 제 눈에 있는 들보를 뽑아버리니까 상대의 티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의 티가 보이는 것은 자기 눈에 들보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들보가 무엇입니까? 바로 자기 자아 곧 자기 원함과 바램입니다. 자기 원함과 바램을 버리지 않는다면 상대의 티만 보이고 그로인해 자기 마음이 상하고 불편함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곧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의 아버지께서는 매사에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환경과 주변 사람들을 통해, 사실은 죄와 사탄을 통해 여러분의 자아 곧 여러분의 원함과 바램을 발견하여 버리게 하십니다. 또한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의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불편하게 하심으로 여러분의 자아 곧 여러분의 원함과 바램을 발견하여 버리게 하십니다. 여러분의 자아 곧 여러분의 원함과 바램을 발견하여 버리게 하시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하나님이 매사에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환경과 주변 사람들을 통해, 사실은 죄와 사탄을 통해 여러분의 자아 곧 여러분의 원함과 바램을 발견하여 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성령님이 여러분의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불편하게 하심으로 여러분의 자아 곧 여러분의 원함과 바램을 발견하여 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자기 자아 곧 자신의 원함과 바램을 다 죽이므로 주님께 속하여 하나가 되고,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신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가 7:13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우리의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가 새것, 묵은 것이 구비하였구나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둔 것이로구나”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고’ 사과 모양의 열매를 맺는 합환채는 히브리어로 “사랑의 식물”이라는 뜻입니다. 창 30장에서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발견했을 때 어머니인 레아에게 주었고, 불임이었던 라헬은 합환채를 가지려고 레아와 협상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듯 합환채가 향기를 토한다는 것은 신부의 주님에 대한 사랑이 주님의 원하시는 세 가지 사역인 주님과의 친밀함과 성령의 능력을 자신의 영으로 나타내는 것과 성도들을 양육하는 일에 넘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위해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을 위해 주님과 함께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열매인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역에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는지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은 합환채가 향기를 토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 주님과 함께 일할 때 합환채가 향기를 토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기 위해서는 주님과의 친밀함을 유지하고 성령님의 능력을 자기 영으로 나타내므로 성도들에게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원망과 시비가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에는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지 않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합환채가 향기를 토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 중에는 주님이 전혀 원하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모든 일들은 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원망과 시비가 있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이 주님이 함께 하지 않는 일들을 하는지 아십니까? 주님이 원하시는지 주님께 여쭙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원하심을 여쭙고 응답을 받으면 그때 주님이 함께 해달라고 기도해야하는데 이런 과정이 없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 모든 일들은 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일들은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자기 혼자 주님을 위해 하는 일은 자기가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만족합니다. 자기는 선을 행했다고--- 롬 10:2,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행위는 힘써서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제발 주님을 위해 일하지 마시고 주님과 함께 일하시기 바랍니다. 빌 2:13,14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여러분 안에서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까?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시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구하게 하시고 그 후에 여러분 마음에 소원을 주심으로 하나님과 함께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원망과 시비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일을 주님의 뜻을 묻고, 주님과 함께 하심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문 앞에는 각양 귀한 실과가 새것, 묵은 것이 구비하였구나” 문은 교통을 상징합니다. 신부는 주님과의 교통을 위해, 친밀함을 위해 각양 귀한 실과를 새것, 묵은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여러분도 주님과의 교통을 위해, 주님과의 친밀함을 위해 각양 귀한 실과를 새것과 묵은 것으로 준비하셨습니까? 마 13: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지금 신부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과 같이 새것과 옛것을 천국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신부가 새것인 새 언약과 새롭고 신선한 깨달음뿐만 아니라, 묵은 것인 옛 언약과 이전에 경험한 승리와 진리를 구비했음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사역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둔 것이로구나”입니다. 지금까지 신부가 받은 연단과 고통, 그로인한 성장은 바로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새것과 묵은 것을 쌓아두기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일하기 위해 우리의 수준을 높여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수준이 같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이 없습니다. 오늘 선포된 말씀을 통해 자기 자아 곧 자기 원함과 바램을 버림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어 주님의 원하시는 일을 주님과 함께 하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같은 신부가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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