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아가강해(66)(아 8:5) 신부를 깨운 목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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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11-14 20:56본문
신부를 깨운 목적은?

지난 한 주간 육체에 속한 신자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사역에 주님을 들어오게 하고 교회와 사역을 위해 주님께 교훈을 받으셨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인격의 미덕을 옳은 행실로 나타냄으로 주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림으로 주님을 취하게 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주님께 마시게 하는 신부가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 완전한 자가 되었기에 “너는 왼손으론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론 나를 안았었으리라”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미숙한 상태에서도 주님을 갈망하는 신부에 대해 주님은 왼손으로 신부의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신부를 안아주셨는데 이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 완전한 신부에 대해 주님은 왼손으로 신부의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신부를 안아주십니다. 이 차이는 어린 아이의 머리에 왼손으로 팔베개를 하고 오른 손으로 안아주는 것은 격려와 위로의 차원이지만 자기 아내에 대해 왼손으로 팔베개하고 오른손으로 안아주는 것은 서로와의 교통과 사랑의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미성한 신부들도 주님으로부터 왼손으로 팔베개를 하고 오른 손으로 안아주는 격려와 위로를 받지만 성숙한 신부들은 주님께 왼손으로 팔베개를 하고 오른 손으로 안아주는 실제적인 교통과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부로서 주님과 실제적인 교통과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부부가 마음과 몸으로 하나를 이루는 것같이 주님과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를 이루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 10:27~30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주님과 하나님이 하나이심을 믿습니까? 신부도 주님과 하나입니다. 아담이 잠든 후에 갈빗대로 지음 받은 하와가 아담과 하나가 된 것같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예수님의 근본된 성령님으로 거듭난 신부도 주님과 하나인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가 된 신부는 주님과 하나 된 증표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님과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부부가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까? 주님과 하나가 되면 됩니다.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고전 6:17절에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하심같이 주님과 합하는 자 곧 주님과 하나가 된 자는 한 영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한 영이 되셨습니까? 주님과 한 영이 아니라면 사탄과 한 영인 것입니다. 사탄과 한 영이 무엇입니까? 사탄의 영과 사람의 영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곧 사탄의 말을 자기 영에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염려하라는 사탄의 말을 자기 영에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표현하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 염려하라는 사탄과 한 영인 것입니다. 불평하라는 사탄의 말을 자기 영에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표현하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 불평하라는 사탄과 한 영인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지 말라는 사탄의 말을 자기 영에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표현하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 항상 기뻐하지 말라는 사탄과 한 영인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과 한 영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영과 사람의 영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곧 주님의 말씀을 자기 영에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자기 영에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표현하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과 한 영인 것입니다.
불평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자기 영에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표현하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 불평하지 말라는 주님과 한 영인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자기 영에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표현하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 항상 기뻐하라는 주님과 한 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과 한 영입니까? 아니면 사탄과 한 영입니까? 지금 신부의 단계는 주님과 한 영을 이룬 단계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자기 영에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곧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표현하는, 순종하는 신앙입니다.
이 수준에 이른 신부의 상태가 지금 아가 8:3절에 “너는 왼손으론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론 나를 안았었으리라”입니다. 주님이 이 수준에 이른 신부가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 상태를 유지하도록 주변의 미성숙한 신자들인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부탁하십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찌니라” 아가 8:5절입니다.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 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예루살렘 여자들이 말합니다.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 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아가 3장에서 신부가 연기 기둥과도 같고 몰약과 유향과 장사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기롭게 됨으로 거친 들 곧 광야에서 오는 자가 된 것 같이, 이제 신부는 그 사랑하는 자인 주님을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곧 광야에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아가 3장의 광야가 신부의 자아를 태우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체험하고 주님의 다양함을 누림으로 신부를 향기롭게 했다면, 아가 8장의 광야는 주님과 하나가 되어 거친 들에서 곧 물질적인 광야에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신부는 더 이상 자신의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재물이나 재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부는 미성숙한 신자들에게도 거친 들 곧 광야에서 올라오는 초월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주변에 물질을 초월하는 분이 계십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이나 재산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잠언 30장은 야게의 아들인 아굴의 잠언입니다. 7~9절입니다. “내가 두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 오는 여자가 누구인고”에서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 오는 여자가 된다는 것은 헛된 것과 거짓말을 멀리하며 주님을 의지하기에 부하게도 마시고 가난하게도 마시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배불리 부유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가난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작 주님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부요함이나 가난함이 다 소용이 없습니다. 부요함이나 가난이 신부의 자격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 때 들림 받을 신부들은 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마음이 되지 못했던 롯의 처는 자신의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재물이나 재산에 연연하다가 소금기둥이 되지 않았습니까? 딤전 6:7~12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이 말씀에 ‘아멘’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실 수 있다면 물질적인 광야에서 올라오고 계신 것입니다. 물질적인 광야에서 올라 와야 하늘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딤전 6:17~19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에 ‘아멘’하실 수 있겠습니까?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십시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런 약속의 말씀이 있는데도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는 일을 멀리하는 분이 계시다면 장래에 자기를 위해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에는 실패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신부가 된다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면,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지금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 오는 여자가 누구인고”하며 탄성하는 예루살렘 여자들에게는 간접적으로, 신부에게는 직접적으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술람미 여인이 주님의 완전한 신부로 성장한 배경과 원인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어디서 주님이 신부를 깨웠다는 것입니까? 바로 사과나무 아래서입니다. 사과나무는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이십니다. 아가 2:3절입니다.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실과는 내 입에 달았구나” 아가 2:3절에서 신부는 신랑이신 주님을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다고 했습니다.
수풀은 나무가 울창하게 가득 들어찬 곳입니다. 여태껏 우리가 추구했던 신랑은 무엇입니까? 돈 아닙니까? 명예, 권세 아닙니까? 건강과 괘락, 직장과 가족 아닙니까? 이것은 다 수풀이었습니다. 신부는 광야를 통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 이 수풀가운데 사과나무 같다는 것입니다. 여태껏 나무가 울창하게 가득 들어찬 곳에서 살았지만 열매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시원케 할 열매, 곧 사과나무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과나무가 주님이라는 사실을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신부에게 사과나무 되시는 주님을 알려준 주체가 누구입니까?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바로 교회입니다.
술람미 여인을 위해 신고한 교회, 술람미 여인을 낳기 위해 애쓴 교회로 인해 술람미 여인이 태어 낳고 결국에는 주님이 술람미 여인을 주님의 신부로 깨운 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의 핏 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통해 여러분을 탄생케 하셨습니까? 교회를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음으로 거듭나셨습니까? 거듭난 영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왕으로, 신랑으로 모셨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여러분을 주님의 신부로 깨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거듭난 자신의 영안에, 성령님을 왕으로, 신랑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결단코 신부는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자기를 죽이는 자들에 대해 뭐라고 하셨습니까?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쌔” 처음에 여러분도 예수님의 기도에서처럼 자기가 주님께 한 일을 잘 알지 못하고 단순히 주님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났을 것입니다. 이것을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서”라고 한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주님이 구원받은 신자를 깨운 결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주님의 신부입니다. 주님이 구원받은 신자를 깨운 것은 거듭난 영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왕으로, 신랑으로 모시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깨어나셨습니까? 그러면 신부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들은 자기의 죄를 잘 모르는데 거듭난 영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자신의 혼 안에 왕으로, 신랑으로 모신 신부들은 자기의 죄를 발견합니다.
주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채찍질 하며,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하며 양 손과 양 발에 못 박고, 옆구리에 창을 찌르던 자들에 대해서도 주님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저들은 자기 죄를 알지 못했지만 주님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듭난 영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자신의 혼 안에 왕으로, 신랑으로 모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들이 다 드러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채찍질 하며,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하며 양 손과 양 발에 못 박고, 옆구리에 창을 찌르는 죄도 알려주십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성령님이 여러분을 깨워주실 줄 믿습니다. 아직도 죄를 짓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가 되심으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건지셨습니다. 그런데도 죄를 짓고 있다면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믿습니까?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인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채찍질 하며,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하며 양 손과 양 발에 못 박고, 옆구리에 창을 찌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인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채찍질 하며,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하며 양 손과 양 발에 못 박고, 옆구리에 창을 찌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불평하지 말라는 말씀인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채찍질 하며,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하며 양 손과 양 발에 못 박고, 옆구리에 창을 찌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깨어난 신부들은 자기 생명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기에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채찍질하며,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조롱하며 양 손과 양발에 못 박고, 옆구리에 창을 찌르는 죄를 더 이상 짓지 않습니다. 깨어난 신부들은 자기 생명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기에 이제부터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고, 주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것입니다. 거듭난 영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자신의 혼 안에 왕으로, 신랑으로 모심으로 깨어나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주님을 핍박하지 않는 거룩하고 정결한 신부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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