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세이 욕쟁이 할매국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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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10-28 18:42본문
욕쟁이 할매국밥 5
새들의 날개짓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걸린 해시계가 점심시간을 알리고 있을 때
연둣빛
나뭇잎 사이로 걸어가던 사람들이
오래된 나무로 얼기설기 맞대어 지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요
어른 국밥 5000
학생 국밥 4000
노인 국밥 3000
××× 국밥 공짜
국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마다
벽에 붙은 가격표에
×××가 뭔 뜻인지 궁금해서인지
“할매예 ×××가 뭡니꺼?”
“와 궁금하나?”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는 할머니를 보며
오는 사람들 마다 궁금증이 커져만 가던 어느 날
“어디 갔다 인자오노?“
“우리 서민들도 저기 저 높은 양반들처럼 날로 먹을 게
뭐 없나 돌아 댕기다 왔네요“
“날로 먹을게 안 있나?"
"뭔데요“
“나이...“
"하하하 그러네요
인자 한 달만 더 지나가면 제 나이도
벌써 육십이네요"
옆에서 말없이 국밥만 들이키던
또 다른 남자가
"그러게 말임더...
벌어놓은 건 없고 나이만
자꾸 먹어가니 원..."
"나이를 왜 먹노. 뱉어야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나이는 먹으면
안 되는 기다“
~ 하하하~.허허허.~흐흐흐...~
힘들게 내달려 온 고달픔을
훅 불면 사라지는 먼지처럼 날려
보내 준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들을 건네며 멀어져 간
한가한 오후
바람만이 흔들고 가는 욕쟁이 할머니 가게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허기진 하루를 알리는 배꼽시계를 따라 걸어온 남자가
비에 젖은 노란 종이 한 장을
탁자 위에올려 올려놓습니다
"계고장...“
달빛마저 사라진 그곳엔 애달픈 자투리 삶 조차도 허가하지 못한다는 노란 종이 한장을 보며
“게안타...
우리 같은 서민들에겐
내일이라는 밑천이 안 있나"
버텨온 세월 앞에
돌처럼 단단했던 마음은 간데없고
조각난 슬픔만 등에 지고
술잔만 기울이는 남자 앞으로
시키지도 않은 국밥에 하얀 쌀밥
한 덩이를 풍덩 넣어 나오더니
“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먼지 아나?”
“뭔데예?"
“나이 먹는 거"
“맞네예"
“재산이라고는
늘어나는 나이밖에 없제?"
“ 그나마 남은 희망도 사라지고
나이만 먹는 것 같아 서럽심더"
가난에도 이자가 붙는 것 같다며 투덜대는 남자를 웃음으로 감싸주던 할머니는
“잘 생각해봐라...
언제나 멀어진 건 희망이 아니라
니 자신이었데이“
"맞네예 “
"희망은 어디 안 가고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있었던기다"
내 머리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만으로
내 발밑에
땅이 있다는 것만으로
희망은 놓지 말아야 한다는 그 말에
잠이 든 하늘처럼 웃고 있는 남자에게
꿈조차 가난해선 안 된다며
주고받던 이야기는
낱 술 서너 잔에 점을 찍고
바람 이불 덮고 잠든 달을 보며
걸어가는
남자의
먹빛 가슴속에 머문 별과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
가슴속에 지는 별이
함께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또 다른 저녁
계절이 씹다 버린 저 달을 보며
걸어 오던 남자는 익숙한 듯 할머니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더니
삶의 정을 지워버린 듯한 눈빛으로
국밥 한 그릇을 시킵니다
“와 그리 다 죽을상이고?“
“ 몽뚱아리로 치자면 우리 같은 서민들은 발바닥 아임미꺼
발바닥이니께 돌아댕기다 왔심더“
“ 녹슬지 전에 많이 댕기라“
“ 게을러서 녹이 슬어 못 쓰는 인생들은 저기 저 높으신 분들 이야기고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닳아서 못 쓰는 인생들 아임미꺼“
굵고 모질게 옭아매져
도둑맞지도 않을 가난을
숨죽인 땅만이 알고 있다는 듯
술잔을 연거푸 들이마시고 있는
남자에게
“좋은 깃털을 가졌다고
좋은 새가 아닌 것처럼
좋은 옷을 입었다고
좋은 사람은 아인기라“
"맞는 말이네예"
““속이 더 중요한기다”
고구마처럼 팍팍한 세상이라도
서로라는 힘으로 더 행복해지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걸어가는
남자의
그 마음과
바라보는
할머니의 이 마음이
두 마음 되어
밤새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허공을 이고 선 눈썹달을 밑천 삼아
찾아 온
다음 날 저녁
“할메요...
요 국밥 한 그릇 푸딱 말아주이소“
“기분이 좋은 걸 보니 오늘은 일이
좀 있디나?“
“예 할매요..
오늘 쪼매 벌었심더”
한번은 밝아오고
한번은 저물어가는
하루를 닮은 인생살이 속에서
행복을 얻었다는 듯
나만 볼 수 있는 눈물을 매단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에게
“더 있으면 큰비 오겠데이
후딱 드가라“
별을 이웃 삼아
달을 친구 삼아
마주하는 하루가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던 남자는
얼큰한 한 잔술에
녹슨 뼈마디를 일으켜 세우더니
없는 이들이 내놓을 수 있는
행복을 찾았다는 듯
“할매도 퍼떡 드가이소“
할머니는
서러운 눈물처럼 내리는 빗줄기 속에
멈춰선 남자에게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버티는 게 이기는 기데이...”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겨울
사람들은
할머니가
하늘나라 먼 길을 떠나신 뒤
알게 되었습니다
×××에 들어가는 말이
없는 자
약한 자
힘든 자
였다는 것을요...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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