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과 어두움에 속한 귀신문화 [2] > 설교와칼럼

본문 바로가기

설교와칼럼

설교 불법과 어두움에 속한 귀신문화 [2]

페이지 정보

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3-10-07 11:20

본문

불법과 어두움에 속한 귀신문화 [2]

우상숭배로 인한 제사 문제의 결과

 

jungginam.jpg

계시의증언 정기남 목사(지저스타임즈 발행인/한국기독교언론부흥사협의회 상임대표)

고전 6:14~18 ‘너희는 믿지 않는 자아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사단)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이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아멘

 

1. 우리는 여기서 제사 문화는 곧 귀신 숭배이다.

고전 10:20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아멘.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라고 했다.

 

애청자 여러분 우리 한국의 제사를 지내게 된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교의 진리로 부흥한 나라들은 제사가 없어졌다. 대체로 각종 잡신을 숭배하는 나라들, 미개한 나라에 살고 있는 자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중국에서는 공자 이전에 제사가 없었다. 있다면 황제를 위한 제사만 있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점차 일반인들에게 제사 풍습이 들어가면서 그들은 자기 부모가 위대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제사 제도가 중국 전역에 퍼져나갔고, 후에는 송나라 시대에 유교학자 주희에 의해서 반드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졌고, 이게 후에 철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를 찾아보면 신라, 고구려시대에는 제사가 없었다. 이 제사 제도가 고려 말과 이조 시대에 유교가 중국에서 들어왔고, 급기야 이 제사 문화가 우리나라에 미풍양속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제사가 민족적 형태로 확산 되었고 이런 제사 때문에 우리 민족이 낙후된 원인이 된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제사를 지내는 민족들치고 풍요롭게 사는 역사가 없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조상귀신을 잘 모셔 놓고 액땜을 하고 그 후손이 복을 받기 위한 것인데 제사를 드리는 민족들은 그 후손들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세계열강의 지배를 받았고 항상 가난했고 항상 야만족의 생활을 했던 것을 우리는 세계 역사 속에서 분명하게 보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년 동안 방에 죽은 자의 시신을 안치하고 있다가 다 썩은 다음에 장례를 지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효도라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귀신이 인간에게 무슨 복을 줄 수 있겠는가? 복은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것이다. 조상귀신이 우리를 잘 살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조상 섬기는 문제는 살아생전에 잘해드려야 한다. 하나님도 이 땅에 있을 때 너희 부모를 잘 공경하라고 했다.

 

(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잘하고 사후에는 그 어떤 형태로든지 존경이나 의식이 행해지면 안 된다. 사후에 행해지는 것은 곧 귀신에게 하는 것이고 그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경배와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 외에는 안 계신다. 제사는 곧 하나님께만 드려지는 예배이다. 그런데 죽은 자에게 우리가 예배를 본다는 것은 곧 귀신에게 예배를 보는 것인데, 그것은 내가 귀신을 섬기겠다는 행위가 아닌가!! 위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하고 묘 앞에서 절을 하고 하는 것은 귀신을 섬기겠다는 자신의 마음의 뜻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된다. 혹시 상 앞에 절은 했어도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말뿐이지 이미 그 영혼은 귀신에게 굴복당한 모습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로 제사상 앞에서 묘 앞에서 죽은 자에게 절을 해서는 안 된다.

애청자 여러분! 본인은 다스림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귀신의 다스림을 받고 살아갈 사람이라면 절을 해도 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를 원하는 자들이다. 어떤 아픔이 있고 어떤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한다. 믿는 자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서 "추도 예배"를 본다. 하지만 "추도 예배"이 단어도 우리가 고쳐야 한다. 죽은 자에 대해서 그 어떤 의미도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추도 예배가 아닌 가정 예배로 드려져야 한다. 죽은 자를 생각하면서 모든 가족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죽은 자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이 땅에 남은 가족들이 더욱 믿음 안에서 바로 서고 죽은 자가 불신자였다면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될 것이고, 믿음 있는 분이었다면 남은 가족들도 더욱 믿음 생활 열심히 하도록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우상 앞에 절하는 자들에게 당대는 물론 자손 3~4대까지 저주가 임할 것에 대해서 십계명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조상들이 자기 후손들이 저주를 받으며 살기 원하겠는가?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가 이 땅에서 아니 죽어서도 저주를 받으며 살기 원하겠는가? 우리가 조상들 앞에 부모님들 앞에 제사할 때 그들이 얼마나 가슴 아파하겠는가? 귀신 앞에 제사를 지내서는 절대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을 수 없다는 이 명확한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저주만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기를 바란다. 이 시대 이 민족이 문명이 발달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우상에 젖어 사는 미개한 정신을 이제 버려야 한다.

 

우리의 가정이......우리의 민족이 진실로 하나님의 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루 빨리 이 땅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귀신문화를 뿌리채 뽑아 버려야 한다. 귀신문화를 이 백성들이 붙들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한 걸음 더 전진해 나아갈 수 없다. 각 가정마다 도사리고 있는 제사 문제, 귀신 앞에 절하는 문제를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를 해결해야 한다. 추호도 저들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

 

왕상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바울은 또 말하기를 21절에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며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했다.

 

애청자 여러분 주의 잔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자만이 받아 마실 수 있는 잔이다. 이것은 곧 피의 잔이다. 주의 상은 성만찬 상에서 우리 예수님의 몸인 빵을 대하는 것이다. 귀신의 잔, 귀신의 상 이것들은 귀신에게 속한 것이며 귀신과 교제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우리 또한 주님과 귀신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에게는 작은 믿음이든, 큰 믿음이든 이미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 권세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는 이미 권세를 받은 자들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권세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사용할 때 "두나미스" 같은 강한 성령의 권능이 나타난다. 예수의 이름을 앞세우고 우리가 나아갈 때 그 어떤 세력도 우리들의 앞길을 막지 못한다.

 

담대히 나아가서 귀신의 세력들을 무너뜨리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상 앞에서 그 어떤 타협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귀신의 세력 앞에서 떳떳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의 믿음 앞에서 귀신의 세력은 맥없이 무너질 것이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싸워서 이겨야 한다. 귀신의 세력은 반드시 싸워서 물리쳐야 한다. 가만히 놓아두면 절대로 나가지 않는다.

 

사람의 힘으로는 완전히 쫓아내 보낼 수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 쫓아내야 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앞세워서 쫓아내야 하고, 귀신이 나아갈 동안까지 우리는 믿음으로 싸워야 한다. 조금 싸우다가 중단해 버리면 안 된다. 귀신의 세력이 완전히 나아갈 때까지 우리는 싸워야 한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그날까지 사단 마귀 귀신문화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사단과 귀신은 가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눈에 안 보일 뿐이지 그들에게도 인격을 가지고 있는 더러운 흑암의 세력들이다. 성경에서도 곳곳에서 사단의 세력과 귀신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예수님에게도 접근해서 미혹했던 사단이다.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진실로 필요한 우리의 싸움이 무엇인지 성경은 밝혀주고 있다.

 

이 시대 세상 문화는 한 마디로 귀신문화란 매체를 귀신이 잡고 흔들고 있다. 명절마다 닥쳐오는 제사 문제로 개인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면 아직도 그 신앙은 어린아이 신앙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눈을 들어 세상 문화를 잡고 있는 귀신의 세력과 싸워야 한다. 우리가 안 싸우면 싸울 자들이 없다. 우리가 안 싸우면 온통 세상은 귀신들이 다 점령하고 말 것이다.

 

(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싸워야 한다. 기도의 전신 갑주, 말씀의 전신 갑주, 성령의 전신 갑주를 입고 싸워야 한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미디안 군대와 싸울 용사를 뽑을 때 두려워 떠는 자들은 다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셨다 귀신의 세력 앞에서 두려워 떠는 자들은 십자가 군병들이 될 수 없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에게 약 356번 이상을 "두려워 말라"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귀신의 세력을 이 땅에서 물리치는 성도들이 되기를 약속하자!

 

그래서 내 마음속에 모든 우상들을 다 끄집어내어서 버려야 한다. 흑암의 더러운 세력들이 우리와 관계되고 있는 한 우리는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고 소망이 없다. 귀신은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는 집단이다. 절대로 우리를 편하게 놓아두지 않는다는 사실, 올가을에 우리는 이 더러운 세력들, 귀신문화를 다 쓸어버리는 여러분과 한국교회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아멘 마라나타!!

 

애청자 여러분 남은 이 한해를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는 역사가 있기를 기원한다. 육적 차원이 아닌 영적인 삶으로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사이트 내 전체검색
  • 주간 인기기사
    장한국 목사코너-586- 반드시 내가 속히 …
    12월 넷째 주일「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광주 푸른솔교회 임직감사예배 드려
    사) 기독교선교교회연합회 선교축제 열어
    한교총, 기독교 종교문화자원 보존과 활용을 위…
    수도침례신학교 총동문회 제14차 정기총회
    곽에스더 목사 선교칼럼(41) 오늘은 참 참…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신년 메세지
    靑松 건강칼럼 (979)... 암(癌) 유병자…
    공동의 선을 위한 협치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그누보드5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청소년 보호정책(대표 겸 발행인 : 정기남)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지양로 176번길 32, (대운빌라 102호) 대표전화 032)672-3031
등록번호 : 경기, 아50924 | 특수주간신문 발행인/편집인 : 정기남 | 등록일/발행일 : 2007년 10월 17일
사업자번호 : 101-08-94879 | 후원계좌: 우체국 310029-02-152769 (정기남)
Copyright ⓒ 2007 크리스찬포토저널(CPJ), Allrights reserved. E-mail:cpj5037@daum.net
편집인 : H.P 010-5468-6574 / 032-672-3031(팩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