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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祝福(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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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3-11-1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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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과 므낫세의 祝福(5)

 

방송신문 대표이사 정기남 목사.jpg

48:1~22

오늘 본문은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것이 기록되어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할아버지 야곱에게 祝福祈禱를 받은 것은 예사스런 축복기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할아버지인 야곱에게 축복기도를 받은 것은 손자된 입장에서가 아니라, 아들(養子)된 입장에서 축복기도를 받았다는 사실을 주시(注視)해야 한다. 

 

▲ 계시의증언 정기남 목사(지저스타임즈 발행인/한국기독교언론부흥사협의회 상임대표)

 

다시 말하면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伯父들이다. 叔父와 동등한 위치에서 축복기도를 받았다. 오히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명실공히 야곱의 친아들로 確定되었고, 이스라엘의 핵심 지파인 열두 지파에 당당하게 등용된 것이다.

 

1. 1절에는 요셉이 부친의 병문안에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帶同(대동)한 것을 묘사하고 있다. 1) “이 일 후에 혹이 요셉에게 고하기를 네 부친이 병들었다 하므로이 말은 47장에서의 야곱의 直感(직감)正確(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을 묘사한 말이다. 즉 야곱은 47장에서 자기의 죽음이 臨迫(임박)한 것을 直感(직감)하고 卽時(즉시) 요셉을 불러서 천국 입성에 대해서 遺言(유언)을 남겼었는데, 역시 야곱의 직감대로 요셉은 이 유언을 남기고 얼마 안 가서 병으로 몸져누운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의 날수를 셀 수 있었던 야곱의 智慧로운 마음과 靈的感覺(영적감각)感動(감동)해야 할 것이다. 실로 모세도 이러한 지혜의 마음을 얻으려고 간절히 기도한 바 있다(90:12). 실로 야곱은 자기가 사는 날 수를 정확하게 세면서 살았던 것이다.

 

2)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아르니라고 했다. 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직감한 요셉이 아버지의 입성을 앞둔 아버지로부터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축복기도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요셉의 신앙을 묘사한 말이다. 여기서 요셉은 자기 가문의 조상들이 임종 전에 후손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요셉은 부친이 병으로 누었다는 소문을 듣자, 지체하지 않고 곧 병문안을 통해서 깊은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안수하고 기도하여 주셨다(19:13~15).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빌어주는 축복은 두 가지다.

하나님의 言約(約束)을 이어 주는 祝福(축복)으로서 이는 신앙생활의 根本(근본)이 되는 축복이다. 조상들의 신앙을 이어 주는 축복으로서 이는 하나님의 언약을 내게서 成就(성취)시킬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조상들의 축복을 받는 자의 姿勢(자세)는 본받을만한 자세다. 복 받는 자세는 잠시도 지체하거나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왜냐하면 복을 빌어주신 아버지께서 임종 직전에 계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안일한 생각으로 축복은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값싼 축복이 아니다. 반드시 받아야 할 성격의 축복이다. 오죽하면 야곱은 이 축복을 받기 위해서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싸움을 질을 했겠으며,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저주를 각오하면서까지 야곱에게 이 축복을 받게 하려고 좋은 새끼로 별미를 준비했겠는가(27:1~46).

 

2. 2절에는 야곱이 臥病(와병) 중에서 힘을 내어 침상에 앉은 것은 야곱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마지막 죽을힘을 다하여 일어나 앉은 것을 묘사한 말이다. 야곱이 침상에서 일어나 앉은 것은 정상적으로 힘 있게 일어나 앉은 것이 아니고, 죽을힘을 다해서 일어나 앉은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야곱의 투철한 사명감과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와병 중에서도 죽을힘을 다하여 일어나는 야곱의 신앙 실력을 명심해야 한다.

 

2:37~40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마음을 다하고라고 묘사했다. 실로 번제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서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태워서 드리는 제사다. 하나님께 드릴 때 인간을 위해서 남겨두고 드리는 예물은 온전한 예물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야곱은 자기의 목숨을 위해서 힘을 남겨놓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서 침상에서 일어나 앉았으니, 그야말로 위대한 신앙 가며,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이다.

 

오늘을 살면서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이여! 아무리 죽을힘이 드는 일이 생기더라도 신앙을 중단하지 말고, 죽을힘을 다해서 일어나 앉으라!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이 하나님을 속이면서까지 자기를 사랑해 봐야 실제로는 자기 생명을 잃을 뿐이라는 사실을 가슴에 깊이 새겨두면 여러분 자신에게도 하나님의 복 주심이 축복으로 임하시길!

 

3. 3~4절을 보면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하기 전에 이들에게 빌어줄 축복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즉 이들에게 빌어줄 축복을 야곱은 어떻게 받았는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1) 야곱은 자기에게 축복하신 분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다. 2) 야곱은 이 축복을 받은 곳을 가나안 땅 루스(벧엘)라고 소개한다(28). 3) 야곱은 자기가 받은 축복을 두 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생육하며 번성하여 많은 백성이 야곱에게서 날 것이라는 축복, 가나안 땅을 야곱의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될 것이라는 축복, 야곱은 이 祝福(言約, 豫言(언약, 예언)을 후손들에게 건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축복을 하기 전에 먼저 소상하게 說明(설명)해 주었다.

 

4. 5~7절을 보면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양자로 편입시키므로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할 준비를 마무리 지었다.

1) 야곱은 르우벤과 시므온과 같이 요셉의 두 아들을 양자로 편입시켰다. 2)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도 야곱의 아들들과 똑같은 산업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3)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이후에 얻은 아들이 요셉의 소생이 될 것을 말해주었다.

 

이제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야곱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백부들과 숙부와 동등한 위치에서 하나님의 복과 기업을 받을 것이다. 이젠 바야흐로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당당하게 편입됨으로 이스라엘의 열두 대표에 당당하게 등용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의 무안한 영광이다.

 

왜냐하면 형들보다도 두 배로 축복을 받음으로 이제 요셉은 많은 형제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야곱의 영적 장자로 격상되었기 때문이다. 실로 이스라엘의 영적 장자는 두 배로 축복을 받는다. 한 배는 육신의 복이다. (육적인 장자는 이 복만 받는다. 예컨대 이스메엘, 에서). 한 배는 영혼의 복이다. (영적인 장자는 이 복을 하나 더 받는다. 예컨대 이삭, 야곱, 요셉...).

 

靈的張子(영적 장자)가 되는 方法(방법).

영적 장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택으로 가능하다. 영적 장자는 하나님을 믿음으로서만 가능하다(거듭남, 重生). 영적 장자의 槪念은 이 두 가지이다. 실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께 선택받아서 중생한 자들이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에 참여할 자들이라고 묘사했다(12:23). 우리는 확실한 하나님의 영적 장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장자의 명분에 잘 맞는 실력 행사를 해야 할 것이다. 살롬

 

5. 8~11절에서 야곱과 요셉은 이집트에서 얻은 미낫세와 에브라임을 하나님께서 許諾(허락)하신 아들들임을 인정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이 異邦結婚을 하고도 속화되지 않고, 오히려 훌륭한 신앙 가정을 꾸려나가면서, 하나님께서 許諾(허락)하신 아들들을 신앙으로 훌륭하게 길러낸 요셉의 위대한 신앙적인 업적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실로 아브라함의 가문에서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도 속화되지 않은 자로는 요셉이 처음이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을 아버지로 두었고, 열세 살에 할례를 받았으나(17:25). 그의 모친인 하갈이 이집트 여인을 자부로 불러들임으로서 이스마엘은(21:21). 결국 불신앙의 노선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에서도 역시 이삭의 장자로 태어나서 신앙의 가문에서 자랐지만, 이방 결혼을 함으로서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26:34~35). 이를 깨달은 에서가 뒤늦게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취했지만, 이것 역시 겉만을 꾸미는 일에 불과했으므로 그는 불신앙의 노선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28:8~9).

 

하지만 요셉은 이방 땅에서 이방 여인과 그것도 이방 신의 제사장인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하여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았으나, 속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요셉은 두 아들이 야곱의 양자가 되어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대표로 등용될 만큼 훌륭하게 길러냈다. 실로 이것이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신앙의 자세다. 세속에 있으나 속화되지 않고 세상에 있으나 고착되지 않고, 돈이 많으나 결코 타락하지 않는 신앙인의 능력과 실력을 備蓄(비축)해야 할 것이다.

 

6. 12~16절을 보면 비록 야곱이 늙어서 부친 이삭과 같이 눈이 어두워져서 앞을 볼 수 없으나,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를 정확하게 구별하여 축복하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1) 요셉은 아버지의 눈이 어두워진 것을 配慮(배려)해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次序(차서)에 의해서 아버지에게 이끌고 나아갔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있는 야곱은 영의 눈을 떠서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자를 정확하게 구별해 내서 그의 머리위에 축복의 오른손을 얹기 위해서 팔을 어긋 맡겨 얹었다. 그리고 야곱은 두 가지를 축복했다.

 

이들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으로 청하여 달라는 것, 이는 영적 축복으로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조상들의 신앙을 전승시켜서 조상들의 신앙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 올리려는 야곱의 기도이다. 이들로 세상에서 번창하게 되어 달라는 것, 이는 육적 축복으로서 세상에서도 크게 되기를 바라는 야곱의 기도이다.

 

7. 17~18절에서 때로는 常識論理超越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미쳐 깨닫지 못한 요셉이 장자와 차자를 구별하여 드렸는데도 아버지께서 이를 무시하고 손을 십자로 얹은 것이 못마땅하여 아버지의 오른손을 에브라임에게서 므낫세로 고쳐서 옮기고자 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신앙 좋기로 정평이 나 있는 요셉도 세상의 상식을 논리에 고착되면 하나님의 섭리에 대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8:5~9).

 

8. 19~20절에서 보면 야곱도 누가 장자인지 누가 차자인지 이미 알고 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고 붙들려서 짓눌려 있기 때문에 요셉의 간청이 창자를 끊지만 결코 허락한 신앙의 자세를 묘사를 묘사하고 있다. 실로 야곱의 신앙은 세계 최대의 신앙이다. 비록 늙었지만 굽힐 줄 모르는 信仰氣槪(기개)가 부럽다. 인생 줄에 매이지 않는 야곱의 公的信仰이 부럽다.

 

실로 오늘날 牧師들이 이러한 氣槪準備해야 한다. 아무리 성도가 反對를 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어긋 맡겨 얹은 손을 내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萬苦에 성도의 극성에 못 이겨서 좌우 바꾸어서 얹은 손을 내린다면, 牧師聖徒도 모두가 不幸轉落되고 말 것이다.

 

목사들이여! 하나님의 뜻이 確實하다면, 바꿔서 얹은 손을 내리지 말라! 성도들이여 하나님의 뜻대로 손을 좌우 바꿔서 얹었을지라도 목사의 손을 고치려고 하지 말라! 야곱은 20절에 보면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祝福받은 代名詞가 될 것이라고 豫言하였다. “저 사람은 에브라임처럼 축복받았어! 저 사람은 므낫세처럼 축복받았어!”라고..... 사실 우리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

 

9. 21~22절을 보면 야곱이 요셉에게 두 가지를 이름으로서 祝福祈禱를 마무리를 짓고 있다. 1) 야곱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출발할 것을 요셉에게 일러주어서 다시 한번 출야굽 思想覺人(각인)시켜 줌으로서 축복기도를 마무리 짓고 있다(21).

 

2) 야곱은 요셉이 다른 兄弟들보다 一部分을 더 주었다고 일러줌으로서 축복기도를 마무리 짓고 있다(22). 실제로 야곱은 형제들보다 두 배로 祝福받았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받은 축복이 바로 그것이다. 이로써 야곱은 靈的長子임이 名實相符하게 立證이 되었다.

 

結論 : 오늘의 靈的長子인 성도들이여! 항상 一部分을 더 받을 수 있는 名色있는 신앙인이 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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