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물을 제단 위에 불사를지니!{2} > 설교와칼럼

본문 바로가기

설교와칼럼

강해 기념물을 제단 위에 불사를지니!{2}

페이지 정보

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3-30 08:08

본문

레위기 강해(5) 2:7~12

기념물을 제단 위에 불사를지니!{2}

 

언론인 정기남 목사(국장).jpg

. 기념물을 제단 위에 불사를지니

그 기념물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2:2).

그 음식제사에서 기념물을 취하여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2:9)

제사장은 그 기념물, 곧 그 제물에서 찧은 곡식 조금과 기름 조금을 모든 유향과 함께 불사를지니(2:16).

 

음식제사에서 기념물이란 언어가 3번 나온다(2:2, 9, 16). 음식제사는 기념물을 불태워 드리는 화제이다. 여기서 히=> 기념물(אַזכָּרָה아즈카라)의 기본 동사 자카르(ןכד)’기억하다란 뜻이다. 따라서 여기 번제단 위에서 불살라진 기념물은 풍성한 수확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기억함과 동시에 헌제 자가 하나님께 자신의 간구를 기억해 달라고 간청하는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한편, 음식제사 제물 중에서 취해져 번제단 위에서 불살라진 기념물’(記念物)은 순수히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의 몫으로 기억의 몫이라고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주의 성찬의 의미가 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자는 주와 연합하여 주 안에 거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사는 영원한 생명의 영생 축복이 있으니 이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복은 없다(6:54~56). 교회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부활의 터전 위에 세워진 것으로서 우리는 영원히 이를 기념해야 마땅하다. 날마다 함께하시는 축복은 그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 임하는 것이다(20:24).

 

고전 11:23~26절 보면 내가 주께로부터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달해 주었나니, 이는 주 예수께서 넘겨지시던 그 밤에 빵을 가지고 24 감사를 드린 후 떼어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쪼개진 나의 몸이니 받아 먹으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으며 25 식후에도 이와 같이 잔을 가지고 말씀하시기를 "이 잔은 나의 피로 된 새 언약이라. 이것을 행하여 너희가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느니라. 26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 분이 오실 때까지 선포하라”. 아멘.

 

. 음식제사의 남은 것은 제사장 몫이다

2:3 음식제사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 될지니 그것은 불로 드리는 주의 제물 중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니라. 2:10 음식제사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 될지니 그것은 불로 드리는 주의 제물 중에서 가장 거룩한 것이니라. 아멘.

 

기념물로 취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임식제물 이외의 제물은 아론과 그 자손들의 몫이 되었다. 따라서 이는 제사장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주요 수단이 되기도 했는데, 제사장들은 반드시 거룩한 곳, 즉 회중의 장막 뜰에서 먹어야 했다(6:16). 반면 제사장 위임식 때 드려지는 음식제물은 전부가 하나님의 몫이었기 때문에, 이때 드려진 임식제물은 완전히 다 소각(燒却)시켜야 했다(6:23).

 

한편 영적인 의미에서 오늘 이 시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성령의 은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친교의 축복,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의 말씀, 향유 등 각양의 거룩한 예물을 차지할 수 있는 제사장 반열에 서게 된 것은(1:6). 진질로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에물 중 특별히 가장 거룩한 것’(카데쉬, 카다쉼 קֹדֶשׁ קֹדֶשׁ ים,)이란 말이 적용된 경우는 음식제사 제물 중 남은 것을 비롯, 진설병 및 속제제와 속건제의 고기 등이 있다.

 

그런가 하면 결국 이러한 것들은 번제단 위에서 불살라지지 않는 제물로서, 그 취급에 있어 일반 용도로 스여지는 경우를 특별히 경고하고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이처럼 가장 거룩한 것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그랜드 주석 참고). 또한 음식제물의 남은 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그의 육체에 채운다고 했다(1:24).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이 먹는 자에게 살과 피가 되어 일체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사람은 그의 생명과 일체가 된다. 남은 음식제물을 아론과 그 자손들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다른 사람은 그 누구도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어 있지 않았다. 아론과 그의 자손들은 오늘 교역자와 그의 자손들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특권도 아무에게나 허락되어 있지 않다. 음식제물은 곧 예수님의 살고ㅘ 피를 기념하는 교회의 사역하는 자들에게만이 주어진 특권이다.

 

예수님의 고난의 남은 살과 피를 먹는 자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일체되는 영광스러운 축복을 누리게 된다. 우리는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8:17). 그리스도의 고난은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자만이 그의 영광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복된 생애가 된다. 사도 베드로는 간증하기를 자신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했다(벧전 5:1).

 

. 음식제물에 금지된 것은 누룩과 꿀이다.

2:11 ‘너희는 누룩을 넣어 만든 어떤 음식제물도 주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불로 드리는 주의 어떤 제물에도 누룩이나 꿀은 불사르지 못함이라’. 고 했다. 음식제사에는 누룩과 꿀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금지되어 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드릴 경우 음식제사는 열납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셨기 때문이다.

 

1. 누룩을 넣지 말라. 금지한 것은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는 성분으로 곧 죄의 부패성을 의미한다. 누룩이 가루에 퍼지는 것과 같이 죄는 인간의 심령을 부패케 하므로 이것을 제거해야 마땅하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사무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16:6). 고 하셨을 때 처음에는 제자들이 누룩을 넣은 빵으로만 착각을 했다가 나중에는 그들의 교훈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형식적인 외식 주의의 교훈이다. 만일 이 누룩을 제거 안하고 그대로 두었다간 진리의 내용보다는 형식을 더 중요시하는 위선자의 탈을 면치 못하게 된다. 뿐만아니라 사두개인들이 누룩은 천사도 부활도 내세도 부인하는 교훈이기 때문에 만일 이 누룩을 제거 안 하고 그대로 두었다간 그 사람은 세속적인 현실주의자가 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누룩은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절대로 금물이다. 이는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누룩 외에도 예수님은 또 한 가지 누룩을 더 경계하신 것은 곧 헤롯의 누룩이다(8:15).

 

이 헤롯의 누룩은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 운동을 하는 기구로 전락될 때 교회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음식제사 제물에 이상의 세 가지 교훈을 따르는 무리들에 의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의 교훈과 사두개인들의 교훈과 헤롯의 교훈은 곧 예수님의 하나님 왕국 운동을 방해하는 악한 누룩이다.

 

그런데 현대 교회 가운데는 이 세 가지 교훈에 오염되어 종종 교회의 부패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이 3대 교훈을 조금이라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유대인의 무교절에는 7일 동안 무교병을 먹고 집구석 구석을 뒤지면서 누룩을 찾아 처리한 것이다. 만일 이 절기에 유교병을 먹는 날에는 이스라엘에서 영영 끊어지고 말기 때문이었다(12:15). 그래서 바리새인의 누룩은 형식과 외식주의 자들이요, 사두개인들의 누룩은 내세를 부인하는 현실주의 자들이요, 헤롯의 누룩은 정치와 타협주의 자들을 가리킨다. 이것들을 멀리하라는 것이다.

 

2. 꿀을 넣지 말라고 했다

성경에는 꿀에 대한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19:10 그것들은 금보다, 많은 정금보다 더 바랄만 하며, 꿀과 벌집보다 더 달도다. 119:103 ‘주의 말씀들이 내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정녕,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나이다. 16:24에 즐거운 말들은 벌집 같아서 혼에 달고 뼈에 건강이 되느니라. 그랬다. 또한 꿀은 잠 24:3내 아들아, 너는 꿀을 먹으라. 그것이 좋기 때문이라 벌집을 먹으라. 그것이 네 입에서 다니라. 그랬다.

 

5:1절을 보면 나의 벌집을 나의 꿀과 더불어 먹었으며, 나의 포도주와 나의 젖과 더불어 마셨도다’. 삼상 14:27다윗이 사울의 난을 피하여 피곤에 지쳐 방황할 때 요나단은 숲 속에서 꿀을 먹고 눈이 밝아진 적이 있었다’. 10:10예언의 말씀은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배에서는 아주 쓰다’. 고 했다. 7:15을 보면 임마누엘의 주님은 악을 버리고 선을 선택할 줄 알 때까지 버터와 꿀을 었었다’. 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꿀은 하나님의 말씀의 모형이기는 하지만 음식제물의 화제에 꿀을 금지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음식제물의 꿀은 달컴한 인정이나 애정, 육정을 금지하라는 뜻이다. 유월절의 음식에는 어린 양의 고기와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었다(12:8)고 했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대로 무교병은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으며, 쓴 나물은 이스라엘에게 이집트의 고난을 상기시키면서 유월절 양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쓴 잔을 기억하게 하는 데 있었다.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는 음식제사 제물에는 꿀같이 달콤한 인간의 인정이나 애정을 가미할 수가 없다.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2:15, 4:4). 그렇게 위대했던 삼손의 힘은 꿀같이 달콤한 한 여인의 애정에 빼앗기고 말았다(16:19). 우리는 예수님의 임마누엘의 축복을 위하여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5:24). 한편 음식제사에 꿀을 금지시킨 이유는 이교도들의 제사와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이교의 종교의식 가운데는 주신(酒神, 바카스), 천신(天神), 지신(地神) 등에 제사할 때 꿀을 제물로 드렸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교도들의 이러한 제사의식을 증오하시기 때문에 음식제사에 꿀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사이트 내 전체검색
  • 주간 인기기사
    산불 피해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
    한교총, 산불 피해 지원 총력 “우는 이들과 …
    소진우 목사, 생명의 양식 가정예배 4-1
    북한인권법 제정으로 북한인권재단 설립 시급하다
    선거법 위반
    기념물을 제단 위에 불사를지니!{2}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인천시, 저출생 극복 정책…
    장한국 목사코너-599- 우리에게 있는 작은…
    아가 강해(38) 아 4:16절 주님만을 위…
    건강칼럼(993)... 고칼륨혈증과 만성콩팥병

그누보드5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청소년 보호정책(대표 겸 발행인 : 정기남)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지양로 176번길 32, (대운빌라 102호) 대표전화 032)672-3031
등록번호 : 경기, 아50924 | 특수주간신문 발행인/편집인 : 정기남 | 등록일/발행일 : 2007년 10월 17일
사업자번호 : 101-08-94879 | 후원계좌: 우체국 310029-02-152769 (정기남)
Copyright ⓒ 2007 크리스찬포토저널(CPJ), Allrights reserved. E-mail:cpj5037@daum.net
편집인 : H.P 010-5468-6574 / 032-672-3031(팩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