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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칼럼

작가에세이 연탄꽃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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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08-0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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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꽃 당신1.jpg

연탄꽃 당신

 

초가삼간 집을 짓고...

흙에살리라...

지금 오래된 녹음기에서는

아버지의 음성이 담긴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엄마는 이 노랫소리를 들으며

삶의 갈피 속에 끼워둔

슬픔 한 장을 내려놓고는

말없이 눈물짓던 그때로

제 기억을 멈춰 세우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통통해진 보름달이 뽐을내더니

별들과 소곤소곤 거리며

놀고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엄마 내일 일찍 와?..”

그래 빨리 갈게...”

내일은 엄마와 같이 노래하는

학예회가 열리는 날이었기에

하늘에서 놀고 있는 달에게

별이랑 잘 놀고 있어...내일 놀자

라는

인사를 건네며 전 잠들고 있었고

엄마는 밤새 재봉틀을 돌려

내일 입을 새 옷을 만들어주고 계셨습니다

..

다음은 김민지 차례입니다

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질 때까지

엄마는 나타나질 않았고

애가 타는 제 얼굴은

빨갛게 달궈진 연탄처럼 붉어져 갈 때

아이고 늦어 죄송합니다

라며

들어서는 엄마를 보고선

제 얼굴은 지는 석양보다 더 붉어져야만 했었죠

연탄배달을 하다

허겁지겁 달려온 엄마의 얼굴에는

미처 지우지 못한

검정 자국이 여기저기 묻어있었기에

아이들은 그 모습에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고

그 자리에 서서 불렀던 노래는

버려진 언어가 되어 가슴에 박혀

붉은 눈물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학예회가 끝난 뒤

아이들만 도란도란 교실에 남아

싸 온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

민지야 울 엄마가

연탄 백 장만 배달해 달래 오늘..... “

" ........."

난 귀찮아 죽겠어

학교 갔다 오면 울 엄만 나보고

연탄재 버리고 오라고 심부름만 시켜서 말이야

민지 너희 엄마한테 말해 가져가 주면

안 되겠니? “

난 그날 대문 앞에서

온 세상 비를 다 맞으며 배고픈 우체통처럼

울며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는 아버지와 같이 연탄 가게를 하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엄마는 연탄 배달을 하고 계셨기에

어린 나는 늘 투정을 달고 살았었나 봅니다

엄마 혼자 가...

난 숙제가 많단 말이야..”

갑자기 양철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열린 창문을 닫으려다

고개 넘어 혼자 손수레를 끌고 가는

엄마의 그 모습이 보기 싫어

창문을 닫아버렸지만

금세 창문에 낀 서리처럼

제눈은 뿌옇게 젖어오고 말았습니다.

비에

젖어 돌아온 엄마에게

엄마 우리 연탄배달 같은 거 안 하면 안 돼?

배달 나갔다 친구랑 마주치는 것도 싫고

나도 다른 애들처럼 학교 다녀와서

놀러 다니고 싶단 말이야

엄만 딸이 중요해 이깟 연탄이 중요해? “

엄마는 그날

팍팍한 삶의 고갯길에서

술 한잔으로 목젖을 적시며 불러놓은

아빠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녹음테이프를

듣고 계셨습니다

울 힘도 없는 엄마가

베겟잎이 흥건히 젖어가면서......

다음날

학교를 다녀온 나의 눈에 엄마는

연탄 가게 앞에

연탄 집 매매

라는

벽보를 붙이고 계셨고

마지막이 될 연탄배달을 하고 계셨습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지나온 말이 먼저 걸어 나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엄마 나도 따라갈까?”

저물녘 언덕을 오른 손수레에

연탄이 다 사라져 갈 때까지

언어는 엄마의 직선과 나의 곡선 사이에서

버려지고 있었고

배고프다며 덜거덕거리는 리어카에는

폐지와 빈 병들이 대신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이깟 것 주워서 뭐 하게..? “

팔아서 노인정에

라면이라도 사 드리면 좋잖아

도울 힘이 남은 건 행복이란다

큰 행복이라도

주워 담은 양 웃음 띤 얼굴로

허공을 업고선 엄마의 등 뒤에서

난 엄마 딸이 된 게 싫어라는 소리에

엄마는 가는 길을 멈춰 세우고

지는 석양에 어린 붉은 눈물을 보이기 싫어

한참을 그렇게 서 계셨습니다

민지야..

저 아래 집들을 보렴

다들 따뜻한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저 사람들을

우린 가족이라 부른단다

그때 엄마의 그 말이 듣기 싫어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함께 할 수 없는 슬픔이

더 크다는 걸 모른 채......

저는

어버이날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만든

빨간 카네이션과 함께

사랑한다는 말은

종이 귀퉁이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게 적어놓은 편지를

목멘 세월을 안고 병마와 싸우며

야여만 가는 엄마의 흩어진 시간 위에

마음을 울려놓고 있었습니다

다시 오지 않을 지난날이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마지막 제 손을 잡고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땀과 아픔과 눈물이 서려 있는

골목골목을 눈여겨 보시더니

가을의 아름다움이 쓸쓸함 이었듯

그렇게 엄마는

9월의 하늘을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눈 내리는 산골짜기 오두막에

아무리 춥고 바람이 불어도

등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가

귀가하지 못한 자식을 기다리는

엄마이기 때문인 것을

이제야

알게 된 못난 딸이

마지막으로 당신 가슴에 남을 때에는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별의 슬픔은

평생 내가 안고 살아갈 거기에....

 

"엄마!

간밤에 눈이 내렸습니다

수북이 쌓인 연탄을 바라보며

햇살에 놓아둔 행복을 느꼈던

엄마의 그 마음으로 살아갈게요..."

오직

당신만 없는 이곳에서

지나고 보니

모든 아픔은 사랑이었습니다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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