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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세이 만 원짜리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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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4-10-17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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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짜리 약

 

게으른 해님이 하늘가에 누워 조각난

구름 베개를 베고 낮잠을 자는 거리는

한산하기만 한데요

 

 

할 일 없는

바람만이 오가는 사람 곁을 스치며

저물어가는 하루 곁을 지키고서

있을 때

 

저 멀리서 손수레에 온몸을 의지한

할머니 한 분이 앉은뱅이 햇살 한 줌을 손에 쥐고 걸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반가운 듯

먼저 달려간 바람이 밀어져서인지

거리의 한가운데까지 힘겨운 걸음을 한 할머니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열려있는 약국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이내

땡볕에 금 간 주름 하나를 얼굴에

더 그려놓고 나와서는

 

바로 옆 또 다른 약국 하나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듯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요

 

 

잠시 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약국 문을 열고 나온 할머니는

잡힐 것 없는 텅 빈 시간을 풀어놓은 길을 따라 조금 더 떨어진 또 다른 약국 간판을 보고는

 

존재의 흔적만 남은 두 다리에

힘을 모아 그 약국으로 걸어 들어

가더니 이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할머니가

왜 저러시나 궁금했는지

누워 자든 해님도 일어나

빼꼼히 내려다보고 있을 때

 

마지막

남은 약국 하나를 발견한 할머니는

누가 울음을 권한 사람처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영감이 내가 아프다고 해서

사다 준건데 약국 몇군데나 찾아

다녀봐도 자기 약국에서 판 게 아니라고 해서..."

 

"찾아다니느라

많이 힘드셨겠어요 할머니"

 

 

이제서야 제대로 찾아왔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할머니를 보며

 

 

"할아버지께서 오셨으면

고생 안하셨을텐데요"

 

"영감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올 수가 없었다오"

 

 

이별을 베고 누운 연고 하나를

건네받은 약사는

 

"여기 약값 받으세요"

 

라며

할머니의 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여주고 있었습니다

 

 

만 원을 들고서

슬픔을 떠나는 눈물처럼

햇살 방울 굴러다니는 거리를 걸어가는 할머니를 보며

 

약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팔아 본 적 없는 약을 들고서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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