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세이 9월 둘째 주일「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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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9-14 06:19본문
“저 푸른 나무처럼, 아직도 노래하는 매미처럼”
이미 가을을 맞고 있는데 교회 뒷동산의 푸른 숲은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하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아침, 저녁이면 산들바람이 산들 부는데도 그 바람이 지나갈 때도 푸른 빛이 보란듯이 더 여름빛 향기를 더해 주고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쯤 매미 소리가 수그러들지요. 매미는 9월이 되었는데도 앙증맞게 울어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가을엽서로 떨어지고 매미 역시 자신의 DNA를 땅속에 스며둔 채 이별을 하겠지만, 여전히 여름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여름과 가을 사이 어디쯤 있다고 할 것입니다. 제가 쓴 ‘여름2’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여름 새벽바다 모래사장에 / 글씨를 써 놓았더니 / 파도가 올라왔다 읽고 내려간다 / 다 읽지 못했는지 / 또 올라왔다 내려갔다 /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지 / 또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며 / 읽고 또 읽는다 / 파도가 내가 쓴 글씨를 지워놓고 / 어디에 있는지 찾고 있다 / 온 우주가 / 새벽 바다에 밀려왔다 떠내려갔다 하며 / 그리움을 노래한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가을 문턱에 다다랐다 할지라도 여름을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즐겨야 합니다. 여름 사랑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마치 모래사장 위에 쓰여진 글자를 파도가 올라와서 지우면 다시 쓰고 또 쓴 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여름을 즐겨야 합니다.
일본의 대표적 하이쿠 시인 고바야시 이싸는 이런 한 줄의 시를 남겼습니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 올해에도 모기에게 물리다니!" 얼마나 익살맞으면서도 삶의 교훈을 주는 시입니까? 올해 여름은 발가락을 다쳐서 산행을 거의 못했지만, 여름 산행을 할 때 모기에 물리면 얼마나 가렵고 신경질이 나는지 모릅니다. 모기는 아무리 쫓아도 또 달려들고 또 달려듭니다. 전기 모기채로 잡고 또 잡아도 계속 날아옵니다. 오죽하면 제가 “이 세상에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모기다”라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살아 있으니까, 모기도 물리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아무리 모기가 물어도 가렵지도 않고 짜증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살아 있으니 여름 모기에 물리기도 하는 것이죠. 가을을 맞이할 때 맞이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여름을 사랑하고 여름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 다시는 오지 않을 또 한 번의 여름이 지나고 있습니다. 어느덧 가을이 오고 또 겨울이 오면 우리는 그 뜨겁고 위대했던 지난 여름의 기억을 추억할 것입니다. 제가 쓴 ‘여름7’의 시처럼 말입니다. “여름 더위가 버겁고 숨 막히는 때 / 당신에게 분명히 서늘한 그늘이 준비되어 있을 거예요 / 비록 그늘이 적다 하더라도 / 그 그늘 아래 앉아 있노라면 /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빗줄기가 떨어지겠거니 / 지난 겨울은 참으로 위대했어요 / 하얀 눈송이가 창문으로 불어와서 / 당신의 귓가에 말을 걸었잖아요 / 그 눈송이가 다시 바람이 되고 비가 되어 / 당신을 찾아왔거니 / 여름에 겨울의 사랑을 느끼듯 / 다시 겨울이 오면 부디 여름의 사랑을 잊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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