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아가 강해(58) “아 7:1~3” 신실한 성도의 신부에 대한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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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9-20 08:59본문
신실한 성도의 신부에 대한 칭찬
지난 한 주간 자기 마음을 지키고 죄와 사탄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주님의 4가지 영광이 되었기에 주변의 신자들에게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신부가 되셨습니까? 주님은 잃었던 에덴동산을 회복했기에 자기 마음을 지키고 죄와 사탄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부를 4가지 영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주님의 4가지 영광은 아침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 같이 엄위한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주변의 신자들에게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신부가 되어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호도 동산에 내려가는 것입니다. 한 주간 힘든 환경과 상황을 이겨나가는 연약한 신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까? 한 주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셨습니까? 한 주간 주변에 있는 신자들의 인격의 미덕이 옳은 행실로 나타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셨습니까?
그렇다면 아 6:12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로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이르게 하였구나”를 체험하셨을 것입니다. 이번 주 화요일에는 목회자아카데미에 참석하는 주의 종들과 함께 강화도 함허동천 캠핑장으로 야유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식사를 하고 마니산으로 등산을 하러가는데 저는 짐을 지킨다는 핑계를 대고 혼자 캠핑장에 남았습니다. 이번 주일에 은혜 받았던 찬양인 나의 피난처 예수를 들으며 눈을 감았는데 제 마음은 어느새 시온교회 성도님들에게 움직여서 너무 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한분 한분을 떠올리며 왜 그렇게 소중하고 귀한 성도님들을 만났는가 주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한 가지 더 감사한 것은 제 마음이 아 6:12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로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이르게 하였구나”를 체험한 것입니다. 아가를 강해케 하기 위해 제게 먼저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 6:13“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로 너를 보게 하라”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환영과 존경에 대해 교회 지도자들과 영적 권위자들이 조롱하는 말인 아 6:14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의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에 대한 진실한 성도들의 변호입니다.
아 7:1절입니다.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평범한 여자였던 술람미 여인이 진실한 성도들의 눈에 이제 귀한 자의 딸로 보인다는 것은 신부의 신분이 왕과 하나가 되었기에 존귀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땅에 속한 신분과 하늘에 속한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땅에 속한 신분은 이 세상에서 현재 살고 있는 모습이며 하늘에 속한 신분은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건 간에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것입니다. 지금 자기 마음을 지키고 죄와 사탄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주님의 4가지 영광이 된 신부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여러분은 하늘나라의 시민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시민권은 그 나라의 백성이 가져야 하는 책임과 의무입니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때는 언제입니까? 바로 철이 든 후에 온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신부는 팔복 중에 일곱 번째 복인 화평케 하는 자가 되었기에 주변에 있는 연약한 신자들을 하나님과 화평케하는 사역을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여덟 번째 복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리까지 이른 것입니다. 이때가 되서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이 무엇인지를 알아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합니다. 그러므로 주변의 신실한 성도들의 눈에 귀한 자의 딸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귀한 자의 딸로서 시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성도들은 신부의 발에 대해 칭찬합니다.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신부는 번영과 존귀를 상징하는 자신의 신 곧 자기를 보호하는 모든 이론과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과 모든 생각을 다 벗었기 때문에 복음의 신을 신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발에서 신을 벗지 않는 자는 결코 주님이 주시는 복음의 신을 신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처음 뜨겁게 만났을 때 정신없이 복음을 전하셨던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은혜로 자기의 신발을 벗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신을 신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복음의 신을 벗고 예전에 신던 자기의 신을 도로 신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허락하신 이유는 은혜로 우리의 신을 벗기시고 복음의 신을 신게 하신 경험을 토대로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자기의 신을 벗고 복음의 신을 신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부는 주님의 연단을 통해 번영과 존귀를 상징하는 자신의 신 곧 자기를 보호하는 모든 이론과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과 모든 생각을 다 벗었기 때문에 복음의 신을 신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엡 6: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지금 신부가 신은 신발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기에 아름답습니다. 롬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신부가 신은 신발인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진 기쁜 소식입니다. 죄로 인해 가난과 질병과 저주와 실패와 사망과 환난이 왔다면 이제 주님의 의로 인해 부와 건강과 축복과 성공과 생명과 형통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는 것입니다.
신발은 발을 아름답게 하며 땅의 더러움으로부터 발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만약에 신발을 신고 다니지 않으면 발이 상하고 금방 더러워지듯이 복음의 신을 벗는다면 땅으로 인해 더럽혀질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는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를 만나도 복음을 전함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야합니다. 어떤 모임에 가더라도 발에 신발을 신음으로, 곧 복음을 전함으로 세상 유혹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함같이 아름다움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발에 복음의 신을 신지 않음으로 세상 사람들과 만나서 더럽혀 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새로운 모임이나 새로운 직장에 가서 바로 복음을 전한다면 함께 술집에 가자는, 함께 나이트클럽에 가자는, 함께 고스톱을 치자는, 함께 일요일에 관광을 가자는 유혹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귀한 자의 딸로서 복음을 전함으로 신실한 성도들에게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라는 칭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 7:1절 후반부입니다.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꿰미 같구나” 신부의 넓적다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힘을 상징합니다. 이 힘은 육적인 힘이 아닌 영적인 힘입니다. 영적인 힘은 육체를 벗어 버리고 세상을 끊고 자아를 죽이며 죄와 사탄을 이기는데 있습니다. 구슬꿰미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공교한 장색이신 성령님을 통해 만든 구슬꿰미 같은 둥근 넓적다리는 연단을 통해 모난 부분이 없는 둥근 구슬꿰미와 같이 성령님이 움직이라는 데로 그대로 움직이는 영적인 힘입니다.
네모난 구슬을 굴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로 굴리면 좌로 갈 것이고 좌로 굴리면 우로 갈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연단과 깍임을 통해 둥근 구슬이 된다면 우로 굴리면 우로 가고 좌로 굴리면 좌로 가는 구슬꿰미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항상 기뻐하라면 항상 기뻐하십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라면 쉬지 말고 기도하십니까? 범사에 감사하라면 범사에 감사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공교한 장색의 만든 구슬꿰미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육체를 벗어 버리고 세상을 끊고 자아를 죽이며 죄와 사탄을 이기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계시다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발을 움직이고 지탱하는 힘인 넓적다리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7:2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배꼽과 허리는 신체의 가장 중앙으로 마음 중심을 상징합니다.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마음 중심인 배꼽이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다는 것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심으로 구속을 은총을 베푸신 것같이 신부의 마음 중심에는 섞은 포도주인 물과 피 곧 하나님의 말씀과 보혈의 공로가 가득히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습니까?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섞은 포도주인 물과 피 곧 하나님의 말씀과 보혈의 공로가 가득히 저장되어 있습니까?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로 성령님을 의지함으로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고 넘어질 때마다 주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계시다면 여러분의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은 것입니다.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밀단은 밀을 베어 묶은 단을 말하고 밀은 떡을 만드는데 사용합니다. 이 떡은 인자의 살인 하나님의 말씀인데 마음 중심인 허리가 기쁨을 상징하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함으로 마음중심에 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마음 중심에 진리로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허리띠를 띠라는 말씀과 같이 지금 신부는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함으로 두르고 있습니다. 매일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계시다면 여러분의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은 것입니다. 요 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주님이 그를 다시 살리신다고 하셨으니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서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일만큼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매일의 삶 가운데서 인자의 살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곧 순종하고 혹여 넘어진다면 인자를 피를 마심으로 곧 주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음으로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아 7:3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아 4:5절에 신부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칭찬은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였습니다. 신부의 두 유방은 항상 영양 섭취와 공급에 있습니다. 아 4:5절에서 신부의 유방은 상대를 위한 공급보다는 자신의 영양 섭취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기쁨으로 자신을 위해 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성장하여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귀한 자의 딸이 된 신부의 두 유방은 이제 자신이 영양 섭취가 아닌 상대를 위한 공급에 있습니다.
지금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은 신부의 두 유방은 상대에게 공급하기 위한 최고의 영양 섭취를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파하니 다른 신실한 성도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은 신부의 풍성한 두 유방은 은혜와 진리에 대한 비율이 같습니다. 믿음과 행함에 대한 비율이 같고, 구원과 심판에 대한 비율이 같고, 말씀 묵상과 기도에 대한 비율이 같고, 율법과 복음에 대한 비율이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먹이는 짝짝이 유방이 아닌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은 두 유방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오늘 신실한 성도들이 신부의 발에 대한, 넓적다리에 대한 배꼽과 허리에 대한 두 유방에 대한 칭찬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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