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아가강해(67)(아 8:6) 죽음보다 강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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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11-21 22:41본문
아가강해(67)(아 8:6)
죽음보다 강한 사랑

주님이 자신의 핏 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통해 여러분을 탄생케 하셨습니까? 교회를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죄사함과 의롭다함을 얻음으로 거듭나셨습니까? 거듭난 영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여러분 마음 안에 곧 혼 안에, 왕으로, 신랑으로 모셨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여러분을 주님의 신부로 깨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거듭난 자신의 영안에 거하시던 성령님을 자신의 마음 안에 곧 혼 안에 왕으로, 신랑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결단코 신부는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거듭난 자신의 영안에 거하시던 성령님을 자신의 마음 안에 곧 혼 안에 왕으로, 신랑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은혜로 얻은 구원조차 잃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열매 맺지 않는 가지마다 잘려진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자신의 왕으로, 신랑으로 모시지 않고서는 도저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버려지는 것입니다.
요 15:1,2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여러분은 참 포도나무 되시는 주님께 붙은 가지가 되셨습니까?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영접함으로 거듭난 것이 참 포도나무 되시는 주님께 붙은 가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참 포도나무 되시는 주님께 붙은 가지가 되었지만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실을 맺는 가지입니까? 아니면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입니까? 여러분이 거듭남으로 참 포도나무 되시는 주님께 붙은 가지가 되었어도 과실을 맺지 않으면 제해지고 과실을 맺으면 더 과실을 맺게 하려고 가지를 더 깨끗케 하십니다.
여러분은 과실을 잘 맺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더 과실을 맺게 하려고 여러분을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요즘 더 깨끗해지고 계십니까?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자신의 더러움을 더욱 더 많이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더러움을 발견하는 것만큼만 깨끗해 질 수 있습니다. 더러움을 발견하지 못하면 깨끗해 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더러움을 발견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묵상입니다. 말씀묵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있는 더러움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견한 더러움을 주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는 기도와 성령님을 의뢰하는 기도를 통해 씻음으로 깨끗해져서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엡 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는 말씀묵상을 통해 감사하는 말보다는 누추함 곧 성적으로 음란하고 난잡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을 했던 자신의 마음에 있는 더러움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견한 더러움을 주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는 기도와 성령님을 의뢰하는 기도를 통해 씻음으로 깨끗해져서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는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말씀묵상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더러움을 발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한 더러움을 주님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는 기도와 성령님을 의뢰하는 기도를 통해 씻음으로 깨끗해져서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지금 이 열매가 맺어지지 않고 있다면 아직 자신의 거듭난 영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자신의 마음 안에는 왕으로, 신랑으로 모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구원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요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열매가 바로 신부요 이 신부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고 열매 맺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 주님은 신부에게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고 하셨습니다.
술람미 여인을 위해 신고한 교회, 술람미 여인을 낳기 위해 애쓴 교회로 인해 술람미 여인이 태어 낳고 결국에는 주님이 술람미 여인을 주님의 신부로 깨운 것입니다. 주님이 구원받은 신자를 깨운 것은 곧 거듭난 영안에 거하시던 성령님을 신자의 마음 안에 왕으로, 신랑으로 모시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깨어나셨습니까? 그러면 신부입니다. 거듭난 영안에 거하시던 성령님을 자기 마음 안에 왕으로, 신랑으로 모신 신부는 주님께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아가 8:6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자신의 거듭난 영안에 거하시던 성령님을 자기 마음 안에 왕으로, 신랑으로 모신 신부는 이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성령님을 왕으로, 신랑으로 모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신 성령님으로 인해 이 자리까지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고전 15:9,10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 바울같이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하실 수 있습니까? 이 고백이 사도의 고백이자 성령님을 자신의 왕으로, 신랑으로 모신 신부의 고백입니다.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성령님을 왕으로, 신랑으로 모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신 성령님으로 인해 이 자리까지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신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님의 사랑과 능력이 함께 하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6절 전반부입니다.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지금 신부는 자기 자아 곧 자기 원함과 자기 바램이 없고 더 이상의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기에 주님께 자신을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고 합니다.
인 곧 도장은 표지나 증명을 나타내는 도구입니다. 지금 신부는 주님께 자신을 표지나 증명을 나타내는 도구인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팔에 두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팔은 주님의 능력을 나타내기에 지금 신부는 주님이 사랑으로 자신을 품어주고, 능력으로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바다 위를 걸으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신 예수님이 자신의 능력과 원함대로 행하지 않으신 것 같이 지금 신부도 예수님같이 자신의 능력과 원함이 아닌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지금 신부는 이미 육체를 벗어버리고 세상을 끊고 자아를 죽이며 죄와 사탄을 다스리는 완전한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과 원함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의지하는 겸손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는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아름다움에 미쳐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고 했던 사탄과 같이 완전한 수준에 이른 신부는 사탄을 정죄하는 그 정죄인 교만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6절 중반, 후반부입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신부가 주님께 주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하는 이면에는 주님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합니다. 이 세상에게 가장 강한 것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권세입니까? 강인한 체력입니까? 명예입니까? 지식입니까? 사람입니까? 다 아닙니다. 이 세상에게 가장 강한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이 모든 것이 다 헛될 뿐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종종 있지 않습니까?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나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정의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랑을 받고 살아난 자가 있다면 자신을 위해 죽은 자를 위해 평생토록 사모하지 않겠습니까? 요1서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이 어떤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죽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우리 죄를 위해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죽이신 그 사랑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어주신 그 사랑이 바로 죽음같이 강한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주님께 죽음같이 강한 사랑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랑의 결과인 하나님의 영이시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런 사랑의 결과로 여러분에게 임하신 성령님의 투기는 그래서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고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은 것입니다. 약 4:4,5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여러분을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시는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 곧 혼 안에 계시다면 절대로 세상과 벗이 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안에서 성령님의 투기가 곧 성령님의 시기와 질투가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고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십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이 세상을 사랑하거나 죄와 사탄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주님께 죽음같이 강한 사랑을 받은 결과로 성령님을 자신의 마음 안에 왕으로 신랑으로 모셨다면 성령님의 시기와 질투가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고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기에 더 이상 다른 신을 섬길 수 없습니다.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의 제 일계명이 무엇입니까?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다른 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외에 자신이 의지하는 모든 대상이 다른 신입니다. 자신의 꿈과 이상이, 돈이, 명예가, 권세가, 건강이, 외모가, 부모가, 자식이, 친구가 다른 신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이나 죄와 사탄의 뜻이 다른 신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신은 없습니다. 오직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한 분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신들은 다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하나님의 원수인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롬 8:6,7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하나님의 원수가 다른 신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롬 8:7절에 무엇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까?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원수가 다른 신들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다른 신들이 무엇입니까?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왜 하나님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고 하신 줄 아시겠습니까? 모든 생각이 곧 육신의 생각이 다른 신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들은 육신의 생각을 통해 사람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교만하라는 생각이 다른 신입니다. 음란하라는 생각이 다른 신입니다. 탐욕하라는 생각이 다른 신입니다. 게으르라는 생각이 다른 신입니다. 혈기내라는 생각이 다른 신입니다. 간교하라는 생각이 다른 신입니다. 말을 많이하라 생각이 다른 신입니다.
이것을 박군의 마음이라는 전도지에서는 악한 일곱 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애굽에서 어린 양을 먹는 육체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나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만나를 먹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음으로 애굽에서 물든 육체를 처리하는 혼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얻을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 육체를 처리하고 세상을 끊고 자신의 자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은 사실을 깨닫고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온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만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서야 일곱 족속을 보게 되고 그들과 전쟁을 시작한 것같이 자기 생각이 악한 영들 곧 다른 신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보이는 혈과 육과의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악의 영들 곧 자신의 생각과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는 말씀같이 말이 영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말이 영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영은 말을 통해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도 사람의 말을 통해 나오고 사탄의 영도 사람의 말을 통해 나옵니다.
그런데 말은 무엇을 통해 나옵니까? 바로 생각입니다. 그래서 생각도 영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마 16:21~23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생각이 영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는 십계명 중에 제 일 계명을 성취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런 싸움을 하고 계신 성도님이 계시다면 그 안에 성령님의 시기와 질투가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고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기에 이런 싸움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시온의 성도 여러분! 성령님의 시기와 질투가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고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아야 모든 생각인 악한 영들과 다른 신들을 잔혹한 음부에 집어 던지고 다 태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주님의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깨달은 신부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가진 자만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완전한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선포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주님께 죽음같이 강한 사랑을 받은 결과로 성령님을 자신의 마음 안에 곧 혼 안에 왕으로, 신랑으로 모심으로 성령님의 시기와 질투가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고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기에 모든 생각인 악한 영들과 다른 신들을 잔혹한 음부에 집어 던지고 다 태우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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