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설교 [왜 들포도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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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작성일 25-12-13 15:49본문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생각해 보았는가?

사 5:1~10절
2. 왜 열매를 맺지 못했는가?
눅 13:6~9절 ‘주께서는 또 이런 비유를 말씀하시더라.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은 후에 와서 그 나무에서 열매를 찾았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한지라. 7 그가 포도원지기에게 말하기를 '보라, 이 삼 년 동안 내가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나 얻지 못하니 잘라 버리라. 어찌하여 쓸데없이 땅만 버리느냐?'고 하니 8 그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여, 금년만 그대로 두소서. 그러면 내가 그 주위를 파고 거름을 주리이다. 9 만일 열매를 맺으면 좋거니와 맺지 아니하면 그때는 잘라 버리소서.'라고 하였노라."고 하시더라. 10 그 후 주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시더라.’ 아멘.
본문 말씀 앞부분에서는 다분히 회개하지 않을 때 내려지는 심판이 강조된 반면, 오늘 말씀의 비유는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는 동안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시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말씀이다. 6절에서 ‘무화과나무 한 그루’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나무로 비유 되었고, 무화과나무로 비유되었다. 성경을 보면 1. 시 80:8-11절에서 이스라엘을 백성들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셨고, 사 5:2에서도 포도나무로 비유하고 있다.
2. 렘 24:3절과 호 9:10절에서도 이스라엘을 무화과나무로 비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고 하셨는데, 누가 심었을까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심으셨다. 비유를 들어 이 말씀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무화과의 열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된 회개를 뜻하고 있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며 포도원에는 여러 종류의 과실수들이 함께 심어졌다.
왕하 18:31 보면 ‘너희는 히스키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시리아 왕이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축복으로 나와 화평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여 너희는 각자 자기 포도를 먹고 각자 자기 무화과를 먹으며 또 너희는 각자 자기 우물물을 마시라.’ 하셨다. 이 말씀은 랍사케{이브리어 라브샤케 רַב־שָׁקֵה}는 ‘관원장’을 이미하는 데 그가 유다 백성들을 마지막으로 회유하기를 내게 항복하고 내 편이 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랍사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에게 항복하고 ‘앗수르’에 온다면 너희들을 축복받으며 풍족한 삶을 살게 되게 해줄 것이라는 유혹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무엇을 생각할 수 있지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스러엘 백성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눈물과 한숨뿐이요, 고통의 빵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 4:4 ‘오히려 그들 각 사람은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요, 아무도 그들을 두렵게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만군의 주의 입이 그것을 말씀하셨음이니라.’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화과나무가 주인의 기대에 어긋나게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내(노력)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7절 여기서 과원 지기는 예수라고 보아야 하며 이 과원지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화과나무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이에 주인은 그 열매 없는 나무를 찍어버리라고 명령한다.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는 두 가지 면에서 부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과실수(果實樹)가 과실을 맺지 못하므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상실 했으며,다른 하나는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서 땅만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쓸모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는 명령은 당연한 것이었다. 여기서 '찍어버림'은 그 시대에 주어지는 하나의 징벌의 수준이 아니라 영원한 파멸을 뜻한다고 보아야 하며 하나님의 인내가 끝날 때 가해지는 심판의 최후 성을 말해주는 것이다(마3:10,7:19,21:18-20). 8절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적 모습이 분명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것은 마치 멸망 받아야 할 소돔성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렸던 아브라함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으로(창18:22-32) 예수가 지니고 있는 신적인 인내와 자기 백성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다.'두루 파고'에서 '파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캐토'는 뿌리 주변에 있는 흙을 부드럽게 해주는 것이다. 거름까지 주는 이러한 배려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기간이 3년이나 지나도록 전혀 과실을 맺지 못하는 나무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형편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정성을 쏟음으로써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궁극적 관심은 심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있음을 보여준다(눅23:34). 9절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는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기 위하여 문장을 완결 짓지 않고 중간에 끝맺는 표현이다.
과원지기는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열매를 맺는 것은 나무의 상태에 달린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매를 맺는 기간을 연장해 주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여건까지 배려해줌으로써, 조건을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열매를 맺느냐 안 맺느냐의 결정은 개인의 주체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회개할 수 있도록 유보(留保)해 둔 심판까지의 기한은 분명히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열매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① 빛의 열매(엡 5:9) ② 선한 열매(약 3:17) ③ 손의 열매(잠 31:31) ④ 영생의 열매(요 4:36, 롬 6:22) ⑤ 의의 열매(암 6:12, 고후 9:10, 빌 1:11,히 12:11, 약 3:18) ⑥ 의인의 열매(잠 11:30) ⑦ 하나님 나라의 열매(마 21:43) ⑧ 입의 열매(잠 13:2, 18:20, 21, 사 57:19, 히 13:15) ⑨ 성령의 열매(갈 5: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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