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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교개혁 운동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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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18-10-1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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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교개혁 운동을 아십니까? 

-종교개혁운동의 정신과 첫걸음-

6-2 이효상 목사.jpg

501주년 종교개혁의 달을 맞았지만 종교개혁의 정신은 실종되어만 가고 개혁교회의 간판을 내려야 하지 않겠나 싶을 정도이다, 이런 때에 개혁신앙을 논하는 이들에게 종교개혁의 첫 걸음을 내디딘 이런 교회개혁 운동을 아십니까? 라고 묻고 싶다.

 

종교개혁을 이야기 할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이가 그리고리 7세이다. 그는 북이탈리아 소아나 출신으로 대장장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본명은 힐데브란트이다. 그는 어린 시절 로마로 가서 친척 아저씨가 원장으로 있던 성 마리아 수도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그 시대는 귀족이 아닌 계급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성직자가 되는 길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승 조반니 그라지아노가 교황 그레고리오 6세가 되면서 그의 보좌관이 되어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러면서 클뤼니수도원의 일원으로 교회개혁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 때 세속적 지역영주와 결탁하여 이루어지는 성직의 매매와 처자식을 거느린 수도사 등이 개혁의 대상이었다.

 

청빈한 수도회운동은 많은 제후들과 교회의 지지를 받았고 특히 로마 교황을 완전히 장악했던 하인리히 3세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당시 왕이었던 하인리히 3세는 힐데브란트의 적극적인 개혁운동을 눈여겨보았으며, 그 왕의 손에 의해 교황자리에 오른 레오 9세는 힐데브란트를 로마로 불러들여 교회개혁운동을 맡겼다. 강직하고 완고한 성격의 힐데브란트에게 교회개혁운동에 안성맞춤이었다. 개혁단체의 핵심이 된 힐데브란트는 교황 알렉산드르 2세의 재임기간 중에 막후 실력자가 되어 교회를 위한 헌신과 눈부신 활약은 압도적인 찬성으로 알렉산드르 2세에 이어 교황에 오르게 된다.

 

그레고리 7세로 로마 가톨릭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는, 교회를 교회되게 하기 위하여 도덕적 개혁을 위한 자정운동에 착수하였다. 이 시기는 교회의 안정으로 일부 성직자들이 왕권과 결탁하여 세속적으로 타락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러한 교회내의 부패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했다. 교회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왕권으로부터 독립하여야만 하며 교회는 교회 스스로 교회됨으로서 그 자체가 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분열된 교회를 하나로 만들어 통일시키고, 이를 위해서 성직자의 규율을 확립하여 세속권력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하였다. 그런 그의 개혁의지를 담은 27개조의 교황령을 내렸는데 그 주요 내용은 성직매매 금지, 사제의 결혼금지, 속인의 주교 서임권 금지 등이 포함된 것이다.

 

1074, 교회의 개혁과 성직자의 자정을 위한 도덕적 개혁의 나팔을 불었으니 로마에서 소집된 공의회에서 결혼 및 첩실을 거느리고 있는 모든 성직자들은 즉시 그들의 배우자를 떠나보내어야 함과 동시에 성직 후보생들은 영원한 독신 생활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교령(敎令)으로 선포한 것이다.

 

이 교령 가운데 가장 주의를 끄는 핵심은 성직자들의 절대적인 결혼 금지였다. 당시 성직자가 처. 자식과 첩 등을 둠으로 친인척에 둘러싸여 바른 성직자의 길을 가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법령집속에 오래 있지만 지켜지지 않음으로 다시 주장한 것으로 그런 관행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다시금 그런 관행을 깨고 성직자 본연의 길을 가도록 하기 위하여 결혼과 성직 매매를 교회 내에서 가장 큰 죄악이라고 공격하였다.

 

 그 당시 주교가 되려면 지역영주나 왕에게 재물을 상납하여 성직을 사므로 그 자리가 많은 특혜와 이권이 있는 자리가 되어 자신이 물러날 때가 되면 그 직을 매매하거나 아니면 자녀들이나 친인척에게 세습하여 성직이 축재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니 교회가 공교회로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교회가 되어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공교회로 만드는 작업의 일환으로 도덕적 개혁운동을 선포한 것이다.

 

그 당시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일부 성직자들의 나쁜 도덕성의 일부분을 공격하였을 뿐이었고, 그 공격은 정당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그 당시의 총체적 죄악들로 인하여 교회의 교회됨을 상실해 가는 것이었다. 성직자들의 독신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신선한 대안이었다. 신부(神父)나 주교가 아내나 자매가 아닌 다른 여자를 가지는 것을 금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혁명적인 칙령이 갑자기 시행되면서 많은 부분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지만 특히 일부에서는 극력한 반대가 보이며 저항했다. 사도바울의 말을 빌어 독신의 은사가 있는 자에게만 금해야 한다는 등 반발하였다.

 

 또 독일에서는 큰 소요가 일어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도덕적 개혁에 대한 교령을 시행하려고 시도했던 성직자나 교황의 사절들은 그들에 대한 공격의 분노가 너무나 큰 것이어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삼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고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많은 나라들에서는 폭력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그레고리 7세는 단호했으며 얼마간의 교령을 수정해달라는 요청에 대해서도 교회를 교회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요구 사항의 일점일획이라도 줄이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는 자신이 펼치는 도덕적 개혁운동이 비상한 처방으로 강력한 반대에 부딪힐 것을 예상하고 처음부터 평신도들에게 호소함으로써 이에 대비하였다. 그는 백성들과 신자들에게 결혼한 성직자와는 교제하지 말라고 열심히 권하였으며,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그러한 성직자의 결혼과 세습이나 성직매매 등 기능 수행을 필요한 경우에 물리력으로 막도록 지령하였다.

 

이렇게 어렵게 시작한 도덕적 개혁운동의 첫걸음에 탄력이 붙은 것은 경건한 수도사들의 동참이었다. 개혁적 동지들을 발견하였고 그들은 그들의 결단과 헌신이 교회를 거룩하게 만드는 개혁의 시발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특히 독신 생활을 위하여 결단한 교령에 충실한 지지자들인 수도사들이었다. 그러나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기는 심히 어려운 일이었다.

 

어찌보면 그레고리 7, 그는 세속적인 쾌락이나 부의 축적에 관심이 없는 외골수인 경건한 수도자였으며, 도덕적 경건을 다른 성직자들에게 요구한 극단적 개혁운동가였다. 그의 도덕적 개혁운동이 그 당시 사람들의 비난도 받았지만, 수도자 출신의 경건함과 정의로움, 뜨거운 열정과 강인함은 중세교회를 어두워져가는 교회에 한줄기 빛처럼 비치어 도덕적 개혁 운동을 일으키는 힘의 원천되었다.

 

이렇개 도덕적 개혁운동을 일으킨 그는 이후 카놋사의 굴욕의 주인공 하인리히 4세에게 패하여 결국 유배되고, 1085525일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에서 나는 정의를 사랑하였고 죄악을 미워하였노라. 그리하여 나는 추방생활 중에 죽노라라는 유명한 유언을 남긴 채 쓸쓸한 임종을 맞이하였지만 그의 도덕적 개혁운동의 발자취는 교회사에 길이 남아있게 되었다.

 

종교개혁 501주년을 맞으며 교회개혁의 첫 걸음을 내디딘 그레고리 7세의 도덕적 개혁운동을 다시금 조명하게 된다.

 

  종교개혁 501주년에 드리는 기도

 

한국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아버지. 지난 134여년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운데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한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소리가 높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고, 빛과 소금임을 알면서도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종교개혁 501주년을 맞으면서도 종교개혁을 가진 개혁주의 신앙의 길을 가기보다는 오히려 개혁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개혁이 끝난 교회가 아니라, 역사속에서 끝없이 변화와 개혁을 계속해야 하는데, 그런 영적 운동도, 지도자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교회는 사회에 영향력을 잃어가고, 병든 시대를 고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감화력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개혁교회의 교회다움을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도와주옵소서. 개혁신앙을 계승한 우리는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으로,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것을 추구하게 하옵소서.

시대의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겠다고 하신 하나님아버지. 우리의 주변에는 개혁의 메시지가 난무하지만 진정 교회를 교회답게하고, ‘복음을 복음되게하려는 순교정신을 지닌 개혁자들이 부족합니다. 이 시대에 종교개혁자들의 정신과 신앙을 계승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시 일어나게 하옵소서. 현실은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교회를 사적인 것으로 만들고, 회개를 이야기 하면서도 재를 무릎쓰고 통곡하는 이가 적습니다.

 

한국교회가 개교회주의, 성장주의, 이기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공교회성을 잃어가고,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어떠한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도덕성과 신뢰성 회복을 반드시 이루고 다시 민족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은혜로우신 하나님. 오늘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을 자복합니다. 새로운 인물을 키우지 못한 잘못, 교회의 사유화에 침묵한 잘못, 자신의 이익을 챙기느라 한국교회 전체를 돌보지 않은 잘못, 하나되어 제대로 싸우지도 대응도 대안제시도 못한 잘못, 말씀과 상관없이 삶으로 신뢰도를 떨어뜨린 잘못, 반성하고 회개하지 않으므로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잘못, 다음세대에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잘못 등은 참으로 부끄러워 통회하며 자복합니다.

 

그래도 부족한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아버지.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다시 회개의 기도의 소리, 말씀의 소리가 울려퍼져 강단이 회복되고 이 땅과 이 민족이 새로워지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이 땅을 고쳐주시고 이 민족을 새롭게 하옵소서.

 

민족이 허리가 갈라지고 분열되어 있듯이 한국교회도 분열과 양극화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와 기초자립도 못하는 교회로 나뉘어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목회생태계를 회복하고 함께 공존하는 건강한 교회로 구원의 공동체로 이루며 미래교회로 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효상 원장(한국교회건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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