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월간 샘터 8월호<소강석 목사의 행복이정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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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19-07-27 21:42본문
『소나기 소년은 울지 않는다』
요즘 내 삶에 있어서 산행을 하는 것보다 더 큰 낙은 없다. 산행을 하면 나는 한 마리 새가 되고 나비가 된다. 나무가 되고 꽃이 되고 풀이 되고 구름도 되는 산행을 나는 열심히 즐기고 있다. 얼마 전 토요일 오후 교회 장로님들과 산행을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한 장로님이 오늘 비 온다고 했다며 서둘러 내려가자고 재촉했다. 천둥치며 소낙비가 쏟아질 거라며 그는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일기예보는 맞았다. 과연 천둥이 치며 장대비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비를 맞을수록 왜 그리도 기분이 좋던지 겉옷뿐만 아니라 온 몸이 비로 흠뻑 젖었는데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기분이 들떠 나도 모르게 장로님들께 이런 말을 하였다. “장로님들, 비 맞으니까 기분 좋으시죠? 소나기 소년이 되는 기분이 어떠세요? 기왕 비를 맞은 김에 기분 좋게 맞아 버립시다.”
그렇게 말하고는 일부러 나뭇가지를 흔들어 장로님들에게 더 많은 빗방울이 떨어지도록 장난을 쳤다. 소년같은 천진난만함이 내 몸을 적셨다. 그 순간 나는 산골짜기에서 바람개비를 돌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어릴 때 비가 오면 고향집 처마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북소리 같기도 했고 장구소리 같기도 했다. 그 소리가 가슴을 쿵쿵 두드리는 것이 듣기에 시원하고 좋았다. 그때의 빗소리를 느껴보려고 나는 장로님들보다 앞서서 나무를 흔든 것이다. 덕분에 우리 모두는 추억의 날개를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갔고 ‘소나기 소년’이 되어 지금의 우리와 산 속에서 재회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융(Carl Gustav Jung)에 의하면 사람의 내면에는 거실과 지하실이 있다. 거실이 의식 세계라면 지하실은 무의식 세계다. 그런데 우리 내면의 지하실에 울고 있는 어린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라도 상처 없는 아이는 없다. 그런데 우리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하실의 어린 아이는 여전히 지난날의 상처를 끌어안고 울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내 마음 깊은 곳의 지하실에도 왜 어린 시절의 내가 울고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항상 상처 입고 아팠던 기억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심리학 용어에 무드셀라 증후군과 순교자(희생자) 증후군이 있다. 무드셀라 증후군은 과거의 좋은 기억만을 떠올리는 심리, 순교자 증후군은 자신의 상처와 아픔만을 기억하는 심리를 뜻한다.
순교자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항상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그러나 무드셀라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므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 확률이 크다. 그러기에 나는 비를 맞으면서도 소나기 소년 시절의 좋은 추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내 안에 무드셀라 증후군으로 남아 있는 소나기 소년은 지하실에서 울고 있는 내 안의 또 다른 어린아이를 만나서 달래고 화해한다. 이런 습관을 반복해 온 나는 글을 써도 갈등을 조장하거나 파괴적인 글을 쓰지 않는다. 항상 사랑과 용서, 화해를 이루는 이야기를 쓴다. 내 안에서 좋은 감정의 선순환이 이뤄질 때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랑과 용서, 화해와 희망의 꽃씨를 뿌리는 글을 쓸 수 있다.
비를 피하기 위해 산에서 서둘러 내려오기보다 소나기를 맞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내 삶의 세월이 화살처럼 빨리 날아가고 몸은 쉬이 늙어간다 할지라도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소나기 소년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 소나기 소년은 결코 울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비 오는 날일수록 내 안에 울고 있는 또 다른 어린아이를 달래 줄 것이다.
오늘도 고향집 처마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는 소나기 소년, 다른 사람 마음의 깊은 지하실 속에서 울고 있는 많은 어린아이들을 달래 줄 소년은 빗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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