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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윤 칼럼(22-14)> 프랑스 바로크와 로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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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2-03-0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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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윤 칼럼(22-14)> 프랑스 바로크와 로코코

 

프랑스 바로크와 로코코.jpg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 연구강좌의 제14<17-18세기 프랑스 바로크(Baroque)와 로코코(Rococo)>223(수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이화여자대학교 정은진 교수(미술사학과)의 강의를 내자(內子)와 함께 수강했다.

 

바로크(Baroque)는 포르투갈어로 찌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perola barroca’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바로크는 유럽의 미술, 건축, 음악, 문학 등을 아우르는 예술 양식이다. 바로크 양식은 군주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지원받은 궁정(宮庭)적인 바로크와 이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발현한 부르주아(bourgeois)적 바로크로 나눠 볼 수 있다. 궁정적인 바로크의 중심은 17세기의 프랑스였다.

 

17세기 프랑스는 16세기 종교전쟁을 끝내고 중앙집권화된 군주제(君主制)를 갖춘 유럽 최고의 강대국이 된다. 루이 14(Louis XIV)1643년부터 1715년까지 절대왕정을 펼쳤다. 1661년까지 마자랭 추기경의 섭정이 계속되었다.

 

루이 14세가 시작한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 건축은 1661년부터 30년이나 걸릴 만큼 총력을 다 했으며, 절대군주 시대 미술의 최고 형태로 등극하며 유럽 전 지역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콜레르 재상은 국가 정책으로 많은 아카데미를 세우면서 예술의 중흥에 국가가 주도한 아카데미 활동이 예술적 취향과 지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1648년에 설립된 왕립회화조각아카데미 졸업생들의 작품을 전시한 살롱(Salon)전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최초의 반()공공 미술전시회였다.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i, 1560-1609)는 최후의 르네상스 화가이면서, 바로크 회화에 서광을 비춘 화가이다. 팔라초 페러네세(Palazzo Farnese)의 프레스코 천정화는 최후의 이태리 르네상스 천정화인 동시에 신화(헤라클레스)를 주제로 바로크 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헤라클레스(Herakles)는 불굴의 인간의지의 표상이다.

 

니콜라스 푸생(Nicolas Possin, 1593-1665)1640년에 궁정화가로 초대받았으며, 프랑스가 유럽의 예술에 중심 역할을 하면서 푸생의 고전주의가 큰 영향을 미친다. 푸생은 무대 예술의 연출처럼 구도, 구성, 인물의 자세까지 세심하게 배치했기에 머리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림 속에서 이야기를 엮어가는 능력이 뛰어난 위대한 화가라고도 불린다. 푸생은 그림이란 말없는 시()라고 했으며, 시가 언어로 하는 것을 그림은 선과 색깔로 보여준다고 했다.

 

클로드 로랭(Claude Rorrain, 1600-1682)은 근대 회화에서 풍경화라고 부를 수 있는 첫 번째 화가로 꼽으며, 푸생과 로랭을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풍경화의 두 거장이라고 말한다. 로랭의 풍경화는 충만한 고요함과 조화를 표현하기 위해 구성을 이상화시킨 것이 특징이며, 영국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정은진 교수는 투르(Georges Tour, 1593-1652), 뷔룅(Charles Brun, 1619-1690), 푸생, 로랭 등의 대표 작품들(Portrait of Louis XVI, Apotheosis of Louis XIV, The Expressions, Self-Portrait, Mars and Venus, The Martyrdom of Saint Erasmus, The Judgement of Paris, Woman Catching a Flea, The Newborn )을 자세히 소개했다.

 

17세기 프랑스 예술이 왕의 시대에 맞는 남성의 예술이었다면 18세기 로코코(Rococo) 예술은 귀족의 시대에 맞는 여성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궁정사회가 여성 취향적인 것으로 바뀌면서 루이 15 시대에는 남성들도 파스텔 색조의 화려한 의상을 입고 뒤로 길게 늘어뜨린 가발에 리본을 달아서 멋을 냈다.

 

로코코 시대를 대표하는 프랑스 화가는 장-앙투안 와토(Jean-Antonio Watteau, 1684-1721)와 프랑수아 부쉐(Francis Boucher, 1703-1770)이다. 초기 로코코를 대표하는 화가인 와토는 군대 장면, 연극 장명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그는 1710년 필립 공의 섭정 시기에 사랑의 섬인 키테라 섬을 주제로 삼아 일련의 연작을 그렸다. 와토는 36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의 제자 파테르와 랑크레가 이어 나갔다.

 

부쉐는 1723년 파리 왕립아카데미에서 대상을 받은 후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으며 그곳에서 티에폴로와 리치의 그림에 감동을 받았다. 부쉐는 1731년 귀국하여 파리에 정착했으며, 왕실 수석화가 등 빠른 속도로 존경과 명성을 얻었다. 그는 화가, 동판화가, 장식미술가로서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다. 그에게 미의 여신, 비너스에 대한 예찬은 중요한 테마였다.

 

1749년 부쉐의 애제자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 1732-1806)가 미술계에 나타난다. 초기에는 부쉐, 루벤스, 와토 등 바로크, 로코코 대가들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로코코 회화를 빛낸 마지막 프랑스 미술가이다. 그는 루이 15세와 마담 퐁파두르, 마담 뒤바리의 후견을 받으면서 로코코 대가로 성장했다.

 

와토, 부쉐, 프라고나르, 라빌 기야르, 비제 르 브룅 등의 대표 작품들(Fetes Venitiennes, Gilles as Pierrot, The Toilet of Venus, Madame de Pompadour, The Love Letter, A Young Girl Reading, The Swing, Self-Portrait with Two Pupils, Marie Antoinette with a Rose )을 감상했다.

 

靑松 朴明潤 (서울대 保健學博士會 고문, AsiaN 논설위원), Facebook, 24 Februar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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