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 칼럼> 추억의 삼청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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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20-11-25 12:39본문
<박명윤 칼럼> 추억의 삼청동길
▲ UNICEF 초창기 직원 단체사진, 뒷줄 왼쪽 끝이 20대 시절 필자, 사진 속 7명 중 4명은 별세.
필자와 삼청동과의 인연은 약 56년 전인 1965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5세에 유엔 공무원(official of the United Nations)으로 임용되어 삼청동에 위치한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주한대표사무소에 첫 출근을 했다. UNICEF에서 1989년 12월까지 25년 동안 근무했으며, 유니세프에 근무하면서 서울대학교에서 보건학 석사(MPH)와 박사(Dr.PH)학위를 취득했다. UNICEF 사무소는 1970년에 청와대 인근 창성동에 위치한 독립 2층 건물로 이전했다.
UN과 대한민국 정부와 협정에 의하여 UN기관 사무실은 정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였다. 이에 UNICEF는 당시 삼청동에 위치한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 훈련부(訓練部) 청사의 1층 일부를 사용하였다. 이 건물은 현존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금융연수원(Korea Banking Institute)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과거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사용했다. 지난달 필자가 이 건물 내부를 살펴보고자 방문했으나 ‘코로나 사태’로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어 건물 밖에서 사진만 찍었다.
▲UNICEF 아시아지역사무처장 Mr. Yehia H. Darwish(왼쪽) 박정희 대통령 예방(1970.3.13.),
첫 출근한 유니세프 사무실 직원은 대표(Mr. Alan E. McBain, 영국인)를 포함하여 7명이었다. 사무실 책상위에는 외국에서 수입한 타자기(수동타자기-전동타자기-컴퓨터로 변경)가, 사무실 창문에는 에어컨(수입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책상, 의자 등 사무실 집기와 사무용품도 모두 수입품이었다. 공용차로 ‘외교’ 번호판이 달린 벤츠(Mercedes-Benz) 승용차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근무는 월요일-금요일 주5일, 9시 출근 5시 퇴근, 그리고 휴가는 1년에 30일을 지키고 있었다.
UNICEF 한국지원사업은 1950년 북한의 6.25남침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 긴급지원을 시작하였으며, 1963년에 서울에 UNICEF 주한대표부(UNICEF Representative's Office in Korea)가 설치되었다. 1960년대 주요 지원사업은 보건분야의 모자보건(MCH), 결핵(TB), 나병(leprosy), 보건인력 훈련, 보건소 지원 등이었다. 결핵퇴치 사업을 예로 들면, BCG 백신을 수입하여 전국 보건소를 통해 보급하였으며, 백신 보관에 필요한 냉장고, 그리고 접종을 위한 이동수단인 차량은 독일 폭스바겐(VW)과 영국 랜드로버(Landrover)에서 도입하여 보건소에 보급했다. UNICEF 한국사무소는 1993년 12월에 한국에서 공식 철수하였으며, 1994년 1월에 UNICEF 한국위원회가 출범하여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던 수혜국(受惠國)에서 도움을 주는 ‘공여국(供與國)’이 됐다.
▲눈 내리는 겨울철 UNICEF 사무실 앞에서 단체사진 그리고 현존하는 옛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
요즘 삼청동에는 다양한 식당들이 있으나, 1965년 당시에는 국무총리공관 앞 골목길에 중국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이에 점심은 중국집에서 또는 승용차를 타고 시내에 나가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가끔 을지로 6가 국립중앙의료원(NMC) 구내에 위치한 북유럽 스타일의 뷔페식당인 스칸디나비안 클럽(Scandinavian Club, 회원제)에서 점심을 먹곤 했다.
스칸디나비아 3개국(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6.25전쟁부상자를 위하여 의료단을 파견했다. 그리고 1956년 한국정부는 유엔을 통해 이들 국가의 의료지원을 요정했으며, 한국정부와 스칸디나비아 3국 정부 그리고 유엔한국재건단(UNKRA)이 공동으로 서울에 국립중앙의료원을 1958년 10월에 개원했다. 스칸디나비안클럽은 국립의료원이 개원하면서 북유럽의 의료진과 가족의 식당 및 사교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 靑松 朴明潤 (지저스타임즈 논설고문)
경복궁 동남쪽에 있는 망루(望樓)인 동십자각(東十字閣, 1880년 건립)에서 국립현대미술관(옛날 수도국군병원), 삼청공원으로 이어지는 삼청동길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삼청동에는 아직도 옛날 가옥들이 많이 있다. 삼청동의 ‘삼청’은 도교에서 지향하는 이상향인 ‘삼청’과 이를 위해 ‘초제’를 집행한 소격서의 ‘삼청전’이 이곳에 있었기에 삼청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으나, 도교적 관념이 약해진 조선 후기에는 ‘산과 물, 그리고 인심’이 맑다는 의미에서 <山淸, 水淸, 人淸>이라고 하여 ‘삼청동(三淸洞)’이 되었다.
필자는 요즘 가끔 아내와 함께 삼청동에 가면 ‘삼청동 맛집’인 ‘삼청동수제비’ 식당과 인근에 있는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집’ 단팥죽집을 들른다. 삼청동수제비는 1980년에 김일근 씨(현재 서울시새마을회장)가 식당을 열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 식당에서는 수제비(9천원), 찹쌀새알옹심이(1만3천원) 그리고 감자전(1만원)을 즐겨 먹는다. 식사 후 디저트로 단팥죽을 먹곤 한다.
▲ 글/ 靑松 朴明潤 (서울대 保健學博士會 고문) Facebook, 24 Novembe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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