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서 시험대에 오른 한국 외교 공감대 얻지 못하고, 왕따와 자화자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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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크리스챤포토저널 댓글 0건 작성일 25-09-27 14:14본문
국제사회에서 시험대에 오른 한국 외교
공감대 얻지 못하고, 왕따와 자화자찬인가?
◀ 한국교회언론회 대표 권다윗 목사
지난 23일(미국 현지 시각) 미국 뉴욕의 유엔총회에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약 20분간 기조연설을 하였다. 그런데 공감대보다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대북 관계에 관한 것에서, ‘앤드’(E-Exchange-교류, N-Normalization-관계 정상화, D-Denuclearization-비핵화)를 주장하였다.
이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자회담을 통하여 비핵화를 이루고, 미국과 북한이 수교를 한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과, 2018년 ‘싱가포르선언’에서 미국과 북한이 관계 정상화를 하고, 평화 체제를 만들고, 비핵화를 이룬다는 것과도 다르다. 물론 선행되었던 회담에서도 북한이 끝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평화 회담이 결렬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의 대통령은 북한과 교류나 관계 정상화를 이루면서, 비핵화로 간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가 흐려질 수 있고, 오히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교류와 정상화는 북핵 문제 해결의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상대의 선의(善意)에 기대하는 외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북한은 현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들이 대부분이다. 저들은 ‘비핵화’를 요구하는 한, 교류나 관계 정상화를 쳐다나 보겠는가? 또 결정적인 요인은 한국과의 접촉이 결국 자신들의 체제 붕괴로 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 유엔총회의 한국 대통령 기조연설에서도 북한 측 인사들은 대부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만남이 아니라면, 회담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오늘의 이런 위기 상황을 만든 것도 한국의 역대 진보정권들이 안일하고 잘못되게 대처한 때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북한의 핵 문제에 관해서 미국은 완전히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해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또 이번에 유엔총회에 참석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등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하였다.
우리는 북핵 문제의 당사국이면서도,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지금까지 확인된 바이다. 그런데 세계 여러 나라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선다는 것은 스스로 미궁(迷宮)에 빠지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외교는 국제 무대에서 계속 ‘왕따’를 자청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 유엔총회가 열리는 곳에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주관한 만찬에 전 세계 정상들 145명이 초청되었으나, 우리나라 대통령은 없었다. 한국과 미국은 절대적이고 전통적인 혈맹이었는데, 어찌하여 이런 상황이 되었는가?
아주 중요하고, 국익을 위한 좋은 기회를 얻은 국제 무대에 나가서 왜 ‘따밥’을 하는 것인지 국민들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호사가들은 언어가 안된다거나 외교적 감각이 없다거나 심지어 국익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오죽하면 한국의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할 때, 유엔총회 회의장에는 참석자들이 대거 불참하여, 절반 이상이 텅텅 비어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외교가 그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는 반증이 아닌가?
그리고 이런 대통령의 ‘대북관’은 두 국가 체제를 용인하는 것이 되어, 위헌적이란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4조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 한다’고 되어 있다.
지난 8월 25일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만나 ‘통상 협의’를 하고 나서, 정부는 합의 문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아주 잘 되었다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두 나라 간 통상 문제는 깔끔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한국 외교의 현주소가 아닌가?
국민들로서는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는데, 왜 외교에서는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지 수긍하기 어렵다. 한국의 성공적 외교를 위해서는 정치적 이념이나 편향성을 넘어서, 국제사회에서 통할 수 있는 식견과 역량과 실력을 갖춘 인재들을 대거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외교적 시각도 국제사회에서 통용되고,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만들어 가야 된다. 국내 정치에서는 민주주의 근간인 ‘삼권분립’ 해체 작업에 들어가 있고, 국제사회에서는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외교 상황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런 국민들의 불신을 정부는 불식(不息)시켜 주어야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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